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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여경훈 연구원이 쓴 "골드만삭스는 어떻게 사기를 쳤는가."를 짧게 해설.
해당 보고서가 보고 싶다면... 다운 받으세요. 현재 새사연 사이트를 개편 중이라. 직접 올려놓았음.
아래는 썸네일 이미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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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3월 24일) 성공회대 사회과학대학에서 '88만원 세대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현실'라는, 다소 저에게는 무리인 주제로 강연을 하였습니다. 다행이 참석한 학생 분들이 잘 들어줘서 무사히 끝났습니다. 강연 후 질의응답을 하면서 인상적인 것들이 몇개 있었는데 그건 다음에 정리를 한 번 해 보겠습니다. 끝나고 뒤풀이도 했는데 저는 1시간 정도 참여했습니다. 강연비는 당연히 안 받는 것으로 했는데, 지난 번에 저에게 강연을 요청한 호적돌 친구에게 그냥 차나 한 잔 달라고 했더니 '차 선물세트'를 줘서 조금 쑥스러웠습니다. 물론 감사하고 좋지요.
아래는 어제 강연 시 사용했던 프리젠테이션 자료와 강연록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혹여나 필요하신 분들은 사용하시면 됩니다. 프리젠테이션은 슬라이드셰어를 통해 보여드리는 건데 전체화면으로 보려면 full을 누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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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현실
이대원(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1. 88만원 세대
‘88만원 세대’는 2007년 8월 경제학자 우석훈 씨와 기자 출신인 박권일 씨가 공동으로 쓴 책으로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88만원이라는 수치는 당시 비정규직 평균임금이 119만원이었는데 20대 급여는 이 금액의 74퍼센트 정도 된다는 사실에서 나온 겁니다.
책이 나온 후의 세대 간 갈등, 386세대와의 대결 등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이런 논란을 제외하고 가만히 살펴보면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20대를 공부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일하는 존재. 즉, 예비노동자로서의 성격을 더 강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 속에는 20대 삶이 결국 향후 자신이 얼마만큼의 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시기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예비노동자로서의 성격이 강해져서,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급박해서, 모두가 돈에 미쳐가는 사회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사실 패배의 단어, 죽음의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패배나 죽음은 여러분의 꿈과 희망에 대한 패배이자 죽음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20대들의 고용상황, 즉 청년고용문제를 둘러싼 것입니다. 살펴보면 좌절할 만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좌절과 패배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저를 포함한 청년들의 꿈과 희망에 대한 겁니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화는 꿈이다. 따라서 당신들은 영화를 보면서 꿈꾸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이 말은 영화는 현실을 은폐하는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 영화를 보면서 꿈만 꾸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참이라면 이 말도 참일 수 있습니다. 약간 비틀어서 말해 보면 이렇습니다. “당신들은 꿈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청년고용시장은 지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독한 현실 속에 들어있는 패배와 좌절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토익, 토플 점수, 학점 등의 스펙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는 꿈과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쉬운 이야기라고 비판하실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꿈과 희망이 너무 약해 보이는 이유는 그 꿈과 희망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 꿈과 희망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너무 약해서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이야기하면서 우리들의 꿈과 희망에 대한 믿음을 조금씩 얻었으면 합니다.
2. 청년 고용시장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문제라고 합니다. 하지만 높은 분들은 청년들의 일자리 눈높이가 너무 높아서 일자리가 있음에도 취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오히려 걱정을 합니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전에 우선 청년이라는 개념부터 짚고 넘어갑시다.
매달 15일 전후에 발표되는 통계청의 고용통계지표(고용동향)에서는 15-29세를 청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OECD 기준은 15-25세지만 한국의 경제 군 복무를 감안하여 29세까지 늘린 것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한국 사회의 청년 계층은 1000만이 조금 넘습니다. 전체 인구에는 20퍼센트, 5분의 1 정도이고 취업자 수는 그 절반도 안 되는 400만 명 정도입니다.
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보면 15-24세의 청년은 대부분 학생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이 83퍼센트를 넘었기 때문입니다. 즉, 경제활동인구가 아니라는 겁니다. 또한 휴학 또는 군 입대 등으로 입학에서 졸업까지는 4년제 대학을 기준으로 하면 최소 6년, 전문대학을 기준으로 해도 3-5년이 걸리게 됩니다. 여기에 졸업 후 취업 준비 기간을 1년 정도로 잡으면 실제 취업연령은 더 올라가게 됩니다. 취업과 고용의 측면에서 청년을 본다면 통계청이 기준으로 삼는 15-29세라기 보다는 25-34세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숫자로는 760만 명 정도가 됩니다.
여러분은 한 학기 등록금이 얼마입니까. 성공회대는 4년제 대학이니까. 총 8학기를 다녀야 하고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평균 한 학기 등록금이 400만 원정도 된다고 하니까. 여러분이 졸업 때까지 등록금으로 부담해야 할 금액은 3200만 원정도 되는 셈입니다. 물론 이 금액에는 등록금 이외의 다른 비용이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돈이 많은 분들이야 이 금액을 모두 부담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힘들게 돈을 벌어서 충당하거나 아니면 은행 대출을 받아서 해결할 겁니다. 8학기 전부를 대출받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나서 취업을 할 때는 상황이 이렇습니다. 지난 3월초에 2010년 대졸 초임을 언론에서 보았습니다. 대기업은 3138만원, 주요 공기업은 2475만원, 외국계 기업은 2792만원,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눈높이를 좀 낮추고 들어가라는 중소기업은 2010만원입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차이는 1128만원이나 됩니다. 대기업이 고용시장에서 기여하는 폭은 전체 고용시장의 10퍼센트도 되지 않습니다. 즉, 취업하는 사람 10명 중 1명 정도만(사실 1명도 안 됩니다) 대기업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대부분 중소기업에 취직한다는 말입니다. 그 중소기업의 연봉이 2010만원이니까 한 달에 160만 원정도인데 4대 보험금을 빼고 나면 실 수령액은 150만 원정도 될 겁니다.
아마 이 정도가 되면 여러분의 나이가 어느 정도 될까요? 여성의 경우 25-26세 정도가 될 거고 남성의 경우는 군대문제가 있으니까 28-29세 정도가 될 것입니다.
대학 등록금 3200만원은 4년에 걸쳐서 낸 금액이니까 마찬가지로 4년간 3200만원을 가처분 소득으로 저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제학으로만 이야기하면 우리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즉, 기회비용을 치르고 대학에 왔으니까요. 3200만원을 모두 대출받았다면 졸업 후 취직을 해서 4년동안 이 돈을 갚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간단히 계산해 봅시다. 4년 동안 3200만원을 모으거나 갚으려면 이자를 감안하여 매달 약 60만 원 정도를 저축해야 합니다.
좀 더 계산을 해 봅시다. 한 달 실수령액 150만원에서 부채상환을 위한 저축 금액 60만원을 빼면 90만원 남습니다. 여기에서 한 달 교통비 식사비 등은 15만 원, 월세 30만 원 정도라고 하면 45만원 남습니다. 그리고 한 달 간 여러 가지 문화생활, 연애생활, 친목도모 등을 위해 30만 원 정도를 지출하다고 합시다. 그럼 남은 돈은 15만원이네요. 15만원으로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참 많습니다. 보험 혹은 결혼을 위해 청약 저축도 넣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려야할 수도 있고 차를 구입했다면 할부금도 내야합니다. 15만원으로 이것들이 가능할까요. 만약 이런 상황에서 덜컥 결혼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 될까요. 웃지 마세요. 요즘 이런 분들 많습니다. 아이가 혼수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결혼하자마자 아이가 생기고 아이 분유, 기저귀 등 들어가는 것도 많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이 편찮으시기라도 하면 또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연봉 2010만원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게 바로 눈높이의 현실입니다. 대학 등록금을 획기적으로 낮춰주면 어떻게 해결방안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는 해결될 수 없을 겁니다. 학업 중인 청년들에게 고용의 문제가 심각한 것은 고용시장이 비좁은 문제도 있지만 대학교육 비용 자체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지난 15일에 통계청에서 나온 2월 고용동향 중 유독 눈에 띄는 수치가 있었습니다. 2월 실업률은 4.9퍼센트로 전년 동월인 2009년 2월에 비해서는 1퍼센트포인트가 증가했고 전월인 1월의 실업률인 5.0퍼센트에 비하면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15-29세만을 따로 집계하면 그 수치가 무려 10.0퍼센트입니다. 정부는 ‘경기회복 조짐과 함께 일자리 사업 관심증대와 취업시즌을 맞은 청년층의 민간 부분 구직활동증가에 기인’했다고 친절히 분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사기에 가깝습니다.
위 표를 보면 알겠지만 2월 고용상황에서 실제 구직활동으로 경제활동인구(실업자)가 된 계층은 60세 이상에서 무려 200퍼센트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 계층은 지난 1월에는 532.0퍼센트라는 기록적인 증가세를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그에 비해 15-29세는 16.2퍼센트입니다. 더욱 심각한 건 가장 많이 일할 나이인 30-39세는 5.7퍼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장 낮습니다. 이럼에도 청년층의 구직활동증가 때문에 실업률이 높아졌다니 지나가는 소가 웃겠습니다.
실업률은 만15세 이상인 생산가능인구를 가지고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중에서 경제활동인구(주1시간 이상 근무, 18시간 이상의 무급가족종사자, 취업자, 실업자)를 가지고 계산합니다. 따라서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준비생, 그냥쉬었음 등의 사실 상 실업자들은 그 수치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10.0퍼센트라는 2월 청년실업률은 실제 체감 실업률보다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은 실제 예비노동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됩니다. 만약 누군가가 학교를 떼려치우고 취직을 하려고 하면 바로 취직이 될까요. 또한 앞서 이야기한 듯이 한국의 경우 15-29세라기 보다는 25-34세의 실업률이 실제 청년실업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경제활동인구 중 한 부분이 가사, 육아인데 30-35세의 여성이 가장 많이 해당합니다. 또한 취직이 안 돼 지난 1년 동안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구직단념자가 25만명이 넘습니다. 또한 취업준비자는 63만 명이나 됩니다. 2월 현재 15-29세의 실업자가 43만 3000명으로 그 비율이 10.0퍼센트라는 건데, 단순히 구직단념자가 25만명만 포함해도 15퍼센트 가깝게 될 것이고 취업준비자를 포함하면 20퍼센트를 넘을 것입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더 심각합니다. 2010년 1월 고용동향에는 전년동월대비(2009년 1월) 남성의 취업자 증가는 9만 1000명이고 여성의 경우 -8만 6000명입니다. 이 말은 1년 동안 일자리가 5000개 증가했는데 그 증가는 대부분 남성 일자리고 여성 일자리의 경우 대부분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또 한가지 재미난 수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대학진학률을 83퍼센트로 하면 100명의 여고생 중 83명이 대학을 갑니다. 고용률이 2월 달에 56.6퍼센트니까 이 중 47명이 취업을 합니다. 하지만 이 중 3분의 2는 비정규직입니다. 즉, 30명 정도는 비정규직이라는 말입니다. 월급은 남성의 61퍼센트입니다. 이러다가 30대 초반이 되면 결혼, 출산, 육아문제로 고용률은 더 낮아집니다. 정부의 단기적, 임시적 일자리 정책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이 바로 여성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조사에 의하면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여성들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가장 낮았습니다.
3. 희망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야기를 시작할 때, 오늘은 패배와 좌절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게 되면 과연 꿈과 희망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지도 모릅니다.
우석훈 씨와 박권일 씨가 이야기했듯이 짱돌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드는 짱돌은 힘이 될 수 있지만 나 혼자 드는 짱돌은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경쟁에서의 뒤처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좌절과 패배감이 짙게 깔려있는 사회에서 가장 먼저 해야 건 나 혼자만 먹고 살겠다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럴 때 짱돌을 던져도 의미가 있는 법입니다.
저는 지난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에서 가장 크게 인상 받은 게 어느 한 학생이 들고 있던 피켓입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함께 살자. 대한민국”
함께 살자는 건 함께 싸운다는 의미도 있지만 기꺼이 불편함을 참겠다는 것도 들어있습니다. 기꺼이 참을 수 있어야 결국 이해하게 되고 또한 싸우게도 됩니다.
정책적인 대안에 대해서는 제가 일하고 있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연구하고 있고 이미 몇 가지 제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선 청년고용할당제인데요. 이건 벨기에서 시행한 로제타플랜의 한국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제타플랜은 벨기에의 형제 영화감독인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이 1999년에 만든 영화 ‘로제타’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로제타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인간 이하의 모멸감과 좋아하는 사람을 배신해야하는 등의 경험을 겪습니다. 자살하기 위해 가스밸브를 열고 누워있는데, 알고 보니 가스가 다 떨어져서 다시 가스통을 사오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나는데 아주 인상적입니다.
실제 벨기에는 이 영화로부터 사회적 의제로 촉발되어 2000년 ‘로제타 플랜’을 실시해 고용인 수 50명 이상인 민간 기업은 전체 고용인의 3퍼센트에 해당하는 수만큼 청년실업자를 추가 고용하도록 조처했습니다. 이를 위반한 기업은 한 명당 매일 74유로(약 12만원)의 벌금을 부과했고, 의무를 이행한 기업에게는 고용한 청년에게 들어가는 첫 해의 사용자 사회보장 부담금을 면제해주었습니다.
이러한 강제 방식은 아니지만, 유럽연합 국가들은 1998년 이후 매년 ‘고용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청년실업 해결을 위한 일자리 창출 방안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프랑스는 ‘고용 강화계약’ 제도를 통해 청년실업자를 채용한 사용자에게는 최대 5년 동안 사회보장 부담금을 감면해주고 임금도 지원해줍니다.
이 같은 정책이 반기업적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청년들을 값싸고 통제하기 쉬운 노동예비군 집단으로 설정하고 이들의 현 상태를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의 근간은 급속히 말라갈 것입니다.
한국은행 장동구 박사는 2009년 12월 ‘국가고용전략 수립을 위한 토론회’에서 ‘성장․임금과 고용간의 관계: revisited’이라는 논문을 발표(보러가기)했는데, 이 논문에서는 고용과 성장의 상호관계를 시뮬레이션하여 고용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선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고용이 성장에 주는 효과가 더 크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고용 없이 소비가 늘지 않으며 소비가 늘어나지 않으면 경제 활성화도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학생들을 ‘토익 폐인’과 ‘공시족(공무원시험 준비생)’으로 만들면서 무슨 지식 기반사회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운운하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청년들을 세상과 단절하고 골방에 처박혀 사는 한국판 ‘히키코모리’로 만들지 않으려면 정부와 기업은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러한 강제 방식은 아니지만, 유럽연합 국가들은 1998년 이후 매년 ‘고용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청년실업 해결을 위한 일자리 창출 방안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프랑스는 ‘고용 강화계약’ 제도를 통해 청년실업자를 채용한 사용자에게는 최대 5년 동안 사회보장 부담금을 감면해주고 임금도 지원해줍니다.
이 같은 정책이 반기업적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청년들을 값싸고 통제하기 쉬운 노동예비군 집단으로 설정하고 이들의 현 상태를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의 근간은 급속히 말라갈 것입니다.
한국은행 장동구 박사는 2009년 12월 ‘국가고용전략 수립을 위한 토론회’에서 ‘성장․임금과 고용간의 관계: revisited’이라는 논문을 발표(보러가기)했는데, 이 논문에서는 고용과 성장의 상호관계를 시뮬레이션하여 고용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선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고용이 성장에 주는 효과가 더 크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고용 없이 소비가 늘지 않으며 소비가 늘어나지 않으면 경제 활성화도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학생들을 ‘토익 폐인’과 ‘공시족(공무원시험 준비생)’으로 만들면서 무슨 지식 기반사회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운운하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청년들을 세상과 단절하고 골방에 처박혀 사는 한국판 ‘히키코모리’로 만들지 않으려면 정부와 기업은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청년인턴제를 시행한 후 실업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별의별 치졸한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180일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실업수당을 받게 되어 있음에도 편법을 사용해 주지 않고 이미 받은 사람들에게 환불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2010년 청년인턴은 아예 계약 조건에 실업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명시되어 있기까지 합니다.
이런 것이 정부와 기업들이 해야 하는 문제라면 여러분 본인이 해야 하는 건 뭘까요. 크게 두 가지라 생각합니다. 하나는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의 문제를 주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러분의 주장과 가장 비슷한 정당을 지지하거나 투표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3월 13일에 창립총회를 한 청년유니온(노동조합)의 조합원입니다. 물론 어제 노동부에서 조합설립신고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반려하였지만 결국은 조합이 만들어 질 것입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노동조합을 건설해 당당하게 이야기하자는 겁니다. 또한 저는 민주노동당 당원입니다. 저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민주노동당만 그런 활동을 하는 건 아닙니다. 진보신당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도 그런 당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 입니다. 꿈과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고 했습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멈춰 있다고 해서 이 사회가 멈춰있지 않습니다. 또한 변하는 이 사회에서 아니 위기의 이 사회에서 적당히 눈치보고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어느 웹페이지에서 보고 인용한 것인데 정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 줄 그어 놓습니다. 여기에 자세한 내용이. 2010.9.7)
우리의 꿈과 희망은 자기 자신과 여러분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옆 사람들이 자신과 처지가 비슷하다면 자기편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힘찬 악수를 한번 하십시오. 그 악수는 바로 힘을 모으자는 표시입니다. 좀 유식한 표현으로 연대의 표시입니다. 불쌍함의 연대가 아니라 꿈과 희망을 향한 연대입니다. 고맙습니다. (20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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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에도 발전 경로가 있듯이(이게 논리적으로 정합하든, 그렇지 않든) 운동 주체에게도 발전 경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은 나이로 하는 것도 명성으로 하는 것도 아니지만 운동을 시작하거나, 지켜오거나, 아직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무언가 그렇게 만드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추적하다보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운동 경로가 보이기 마련이다.
2. 멋 모르고 시작 -> 좌절과 실패 -> 실력 배양 후 복수 다짐 -> 좌절과 실패 -> 효과적인 싸움을 위해 머리를 굴림(이 단계에서 운동 포기자 속출) -> 좌절과 실패 -> 멋 모르지는 않으나 운동의 아름다움을 발견함 -> 좌절과 실패라는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움 -> 후배들이 멋 모르고 시작 -> ....
3. 위와 같은 경로는 내가 생각하는 운동의 발전 과정이다.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아무래도, 아무리 좋게 봐줘도 '실력 배양 후 복수 다짐' 단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즉, 나는 아직 운동의 경험과 지혜가 일천하다. 그럼에도 열심히 운동하는 후배들이나 많은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선배님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움을 가지는 것 보면, 이거야 말로 오만과 거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증거다.
4. 어제 봄비가 내리고, 최근 며칠 계속 날씨가 좋다. 식물들도 푸른 잎을 내려고 몸이 한창 부풀어 있다. 부풀어 올라 결국 세상을 향해 무언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나는 계속 무언가 풀리지 않는 의문과 질문들 때문에 늘 피곤한 느낌이다. 그러던 와중에 민경우 선배님의 글 '신영복과 비틀즈'를 읽었다. 선배님의 글이야 자주 보고, 선배님 자체가 재미있는 분이라 얼굴도 자주 보지만 이번 글을 나에게 울림이 있었다.(물론 이전 글이 울림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말길) 앞서 말한대로 꼴랑 몇 단계나 거처왔다고 운동이나 개인의 미래를 걱정하는가. 아직 가야할 길이 이리도 먼데. 선배님이 한 마디로 정리하셨다. 아무래도 선배님은 운동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단계가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5. 언젠가부터 더 예리해져야 한다. 더 세밀해져야 한다. 더 똑똑해져야 한다는 식이 강박이 나를 사로잡은 것 같다. 실제 그 만한 능력이 있지 않음에도 그런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과장된 언행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기만 했다. 한마디로 과정을 최대한 숨기고 결론만을 보여주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원 미래야 뻔할 수 있지만, 현재 전투적으로 공부하는 이대원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계속 패배해 왔지만 승패와 무관하게 투쟁한다면 이대원 역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나이도 어린 게 지혜 운운하지 말고 30년 정도 더 전투적으로 산 후에 술 처먹으며 이야기해도 늦는 건 아니지 않을까?
조금 민망하지만 이런 질문이자 답을 민경우 선배님이 주고 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조금 더 과감하게 한 발 전진해야 할 시점임을 새삼 느낀다. 그럼 의미에서 이 글은 선배님에 대한 감사의 글이다. 감사의 뜻으로 선배님이 눈물을 흘리셨다던 비틀즈의 Let It Be를 보내드린다.
2. 멋 모르고 시작 -> 좌절과 실패 -> 실력 배양 후 복수 다짐 -> 좌절과 실패 -> 효과적인 싸움을 위해 머리를 굴림(이 단계에서 운동 포기자 속출) -> 좌절과 실패 -> 멋 모르지는 않으나 운동의 아름다움을 발견함 -> 좌절과 실패라는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움 -> 후배들이 멋 모르고 시작 -> ....
3. 위와 같은 경로는 내가 생각하는 운동의 발전 과정이다.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아무래도, 아무리 좋게 봐줘도 '실력 배양 후 복수 다짐' 단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즉, 나는 아직 운동의 경험과 지혜가 일천하다. 그럼에도 열심히 운동하는 후배들이나 많은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선배님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움을 가지는 것 보면, 이거야 말로 오만과 거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증거다.
4. 어제 봄비가 내리고, 최근 며칠 계속 날씨가 좋다. 식물들도 푸른 잎을 내려고 몸이 한창 부풀어 있다. 부풀어 올라 결국 세상을 향해 무언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나는 계속 무언가 풀리지 않는 의문과 질문들 때문에 늘 피곤한 느낌이다. 그러던 와중에 민경우 선배님의 글 '신영복과 비틀즈'를 읽었다. 선배님의 글이야 자주 보고, 선배님 자체가 재미있는 분이라 얼굴도 자주 보지만 이번 글을 나에게 울림이 있었다.(물론 이전 글이 울림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말길) 앞서 말한대로 꼴랑 몇 단계나 거처왔다고 운동이나 개인의 미래를 걱정하는가. 아직 가야할 길이 이리도 먼데. 선배님이 한 마디로 정리하셨다. 아무래도 선배님은 운동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단계가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87년 7월 8일 연세대 백양로 광장에서 이한열 추모사를 하러 등단하신 문익환 목사님은 추모사는 하지 않고 수많은 열사들을 한명씩 외쳐 부르며 추모사를 대신했다. 한진중공업 김주익을 추모하며 목놓아 울던 김진숙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맞아 노상에서 단식이란 걸 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미래야 뻔하지만 김진숙의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강권통치와 싸우겠다며 모여 앉은 20대 청년들의 깨끗한 열기가 좋았을 뿐이고, 고상한 추모사 대신 통곡으로 자리를 대신한 노목사의 처신이 좋았을 뿐이다. 승패와 무관하게 거리에 나 앉은 김진숙이라는 여자가 좋을 뿐이고, 요새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총명한 초년생 정치인의 좌충우돌하는 어리숙한 행보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친구가 노회찬이나 심상정처럼 잔머리를굴렸다면 나는 그녀를 보는 재미가 덜했을 듯 하다.
나는 내가 미쳐갈 때가 좋다. 승패를 따지기에는 너무 어리숙하고 순진했던 우리가 그냥 좋다. 신영복이 보여주는 지혜로움은 한 30년쯤 후에 승패가 더 이상의 여지 없이 명백해졌을 때 그 때가서 술이나 쳐먹으며 천천히 갖도록 하자.
5. 언젠가부터 더 예리해져야 한다. 더 세밀해져야 한다. 더 똑똑해져야 한다는 식이 강박이 나를 사로잡은 것 같다. 실제 그 만한 능력이 있지 않음에도 그런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과장된 언행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기만 했다. 한마디로 과정을 최대한 숨기고 결론만을 보여주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원 미래야 뻔할 수 있지만, 현재 전투적으로 공부하는 이대원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계속 패배해 왔지만 승패와 무관하게 투쟁한다면 이대원 역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나이도 어린 게 지혜 운운하지 말고 30년 정도 더 전투적으로 산 후에 술 처먹으며 이야기해도 늦는 건 아니지 않을까?
조금 민망하지만 이런 질문이자 답을 민경우 선배님이 주고 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조금 더 과감하게 한 발 전진해야 할 시점임을 새삼 느낀다. 그럼 의미에서 이 글은 선배님에 대한 감사의 글이다. 감사의 뜻으로 선배님이 눈물을 흘리셨다던 비틀즈의 Let It Be를 보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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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는 연구원의 보고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고서들 중 일부를 PPT 혹은 플래시로 제작하여 제공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한 주에 한 개씩 정기적으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새사연의 보고서 중 PPT로 제작하면 좋겠다는 보고서가 있다면 적극 말씀해 주시기 바립니다.
제작하는 PPT는 보고서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보고서의 내용 중 핵심적인 부분을 알기 쉽게 풀어놓는 방식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미국의 금융개혁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1월 21일,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한 금융개혁안에 대한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의 탐욕과 투기 끝에 맞은 금융위기와 오바마의 금융개혁안 발표를. 월스트리트의 공격과 오바마의 반격으로 설정해 보았습니다.
다음 주에는 금번 금융위기로부터 한국은 무엇을 배우고 달라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부탁, 앞으로 이 PPT시리즈의 제목을 달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네요. 좋은 의견있으시면 댓글 남겨주세요~
참고자료
1. 오바마 행정부의 '금융위기책임세' 2010.01.20. 여경훈. 새사연
http://saesayon.org/sight/sightview.do?paper=20100120151802567&pcd=EA01
2. 미국의 '대마불사' 규제와 시사점 2010.02.02. 여경훈. 새사연
http://saesayon.org/sight/sightview.do?paper=20100202141140061&pcd=EA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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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당이 창당 10주년을 맞이한 것과 경찰과 검찰이 민주노동당 서버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는 상황을 보면서 몇가지 생각을 했다.
내 기억에 의하면 2001년이었던 것 같다. 당원 가입서를 한 강의실에서 받았다. 사실 그 때는 당원이 된다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이 생겼는데 다른 사람들도 가입하니까. 대학에 들어오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하튼 학생회에 가입되듯이 말이다. 한마디로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 어떤 자부심, 든든함 같은 게 없었다는 말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까지 당비 납부 관리도 하지 않았고 혹여나 당비가 납부되지 않더라도 그리 큰 문제의식도 없었다. 때때로 당내 선거나 대선, 총선 등과 같은 있을 때나 밀린 당비를 몰아서 내고 당권을 회복하고, 선거 운동에는 그냥 체면치레하는 정도로 결합했었다. 아무래도 당시 나는 당원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학생운동가로서의 자각이 더 컸던 것 같다. 그 시점에서 나와 주변 몇몇 학생운동가들은 학생운동의 새로운 조직노선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학생회 조직과 진보정당 학생위원회라는 두 조직을 중심으로 향후 학생운동이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여전히 내 중심축은 학생회 조직에 있었다.
2006년 12월 1일. 나는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있는 한 회사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오늘이 2010년 2월 19일이니까 년수로만 보면 4년이 지난 일이다. 2006년 12월 1일 이후에도 나는 한대련 정책위원장으로서 임기를 마치기 위해 간부전원회를 두 번이나 참석했다. 12월말 우이동 중앙간부 MT를 계기로 10년 남짓한 내 학생운동에는 마침표가 찍혔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2007년 1월부터 비로소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물론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은 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눈물을 흘리던 단병호 의원님(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모습을 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의 시작은 2007년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된 당원결의대회에서 다시 천영세 부대표의 "당의 상징(권영길 의원님을 지칭)이 지금 국회에서 떨고있다."는 발언을 들었던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다른 당의 당원들 역시 자신의 당에 대해 자부심을 갖겠지만 조금 오바해서 이야기하자면 당시 나는 스스로가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당원으로서 당원결의대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에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부끄러운 일을 하나 공개하자면. 나는 2006년 말까지 내 당원번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창피해서 지역위 사무실에 물어보지 못하다가 인터넷으로 당직 선거 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모니터 화면으로 통해 내 당원번호를 알게 되었다. 내 당원번호를 알게 되었을 때. 그 기분은 사뭇 오묘했다. 내 당원번호는 24124번이다. 내 주위 당원들보다 당원번호가 더 앞이라서 좋기도 했고(당시에는 좀 세속적인 이유로 당원번호가 중요했다..^^) 내가 당의 한 구성원으로서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09년 4월 14일이 되었다. 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당연히 난 당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산업기능요원을 하던 중 당은 쪼개졌고 당원은 애초 당원의 절반 이상을 유지했지만 당의 이미지는 절반 이하로 추락했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그래도 난 진보신당으로 갈 수는 없었다. 내가 NL이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난 민주노동당을 위해 한 것이 하나도 없고, 또한 당에서 해보 싶은 것이 막 생겼는데 민주노동당을 떠난다는 것은 운동을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그 때부터 절반의 당원이 되었다. 쪼개진 진보정당의 당원은,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절반의 당원일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아저씨가 이야기했다. 홍콩은 유령의 도시라고, 자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면서 남한에서 영화를 하면서 시간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절반의 시간 속에서 영화를 하는 거라고.
그대로 차용하자면,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사는 건 절반의 당원으로 사는 거다. 그렇다면 이 절반의 당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민주노동당이 당원들에게 답해야 하는 건 이 질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권영길 의원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던데, 새해에는 더 활기차고 무탈하시길 기원해 본다.
내 기억에 의하면 2001년이었던 것 같다. 당원 가입서를 한 강의실에서 받았다. 사실 그 때는 당원이 된다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이 생겼는데 다른 사람들도 가입하니까. 대학에 들어오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하튼 학생회에 가입되듯이 말이다. 한마디로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 어떤 자부심, 든든함 같은 게 없었다는 말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까지 당비 납부 관리도 하지 않았고 혹여나 당비가 납부되지 않더라도 그리 큰 문제의식도 없었다. 때때로 당내 선거나 대선, 총선 등과 같은 있을 때나 밀린 당비를 몰아서 내고 당권을 회복하고, 선거 운동에는 그냥 체면치레하는 정도로 결합했었다. 아무래도 당시 나는 당원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학생운동가로서의 자각이 더 컸던 것 같다. 그 시점에서 나와 주변 몇몇 학생운동가들은 학생운동의 새로운 조직노선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학생회 조직과 진보정당 학생위원회라는 두 조직을 중심으로 향후 학생운동이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여전히 내 중심축은 학생회 조직에 있었다.
2006년 12월 1일. 나는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있는 한 회사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오늘이 2010년 2월 19일이니까 년수로만 보면 4년이 지난 일이다. 2006년 12월 1일 이후에도 나는 한대련 정책위원장으로서 임기를 마치기 위해 간부전원회를 두 번이나 참석했다. 12월말 우이동 중앙간부 MT를 계기로 10년 남짓한 내 학생운동에는 마침표가 찍혔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2007년 1월부터 비로소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물론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은 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눈물을 흘리던 단병호 의원님(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모습을 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의 시작은 2007년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된 당원결의대회에서 다시 천영세 부대표의 "당의 상징(권영길 의원님을 지칭)이 지금 국회에서 떨고있다."는 발언을 들었던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다른 당의 당원들 역시 자신의 당에 대해 자부심을 갖겠지만 조금 오바해서 이야기하자면 당시 나는 스스로가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당원으로서 당원결의대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에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부끄러운 일을 하나 공개하자면. 나는 2006년 말까지 내 당원번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창피해서 지역위 사무실에 물어보지 못하다가 인터넷으로 당직 선거 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모니터 화면으로 통해 내 당원번호를 알게 되었다. 내 당원번호를 알게 되었을 때. 그 기분은 사뭇 오묘했다. 내 당원번호는 24124번이다. 내 주위 당원들보다 당원번호가 더 앞이라서 좋기도 했고(당시에는 좀 세속적인 이유로 당원번호가 중요했다..^^) 내가 당의 한 구성원으로서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09년 4월 14일이 되었다. 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당연히 난 당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산업기능요원을 하던 중 당은 쪼개졌고 당원은 애초 당원의 절반 이상을 유지했지만 당의 이미지는 절반 이하로 추락했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그래도 난 진보신당으로 갈 수는 없었다. 내가 NL이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난 민주노동당을 위해 한 것이 하나도 없고, 또한 당에서 해보 싶은 것이 막 생겼는데 민주노동당을 떠난다는 것은 운동을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그 때부터 절반의 당원이 되었다. 쪼개진 진보정당의 당원은,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절반의 당원일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아저씨가 이야기했다. 홍콩은 유령의 도시라고, 자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면서 남한에서 영화를 하면서 시간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절반의 시간 속에서 영화를 하는 거라고.
그대로 차용하자면,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사는 건 절반의 당원으로 사는 거다. 그렇다면 이 절반의 당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민주노동당이 당원들에게 답해야 하는 건 이 질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권영길 의원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던데, 새해에는 더 활기차고 무탈하시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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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사 추모제에서 시인 송경동을 몇 번 보았다. 사실 그 때는 그냥 그런 시인으로 생각했다. 문학적 재능보다는 운동에 대한 열정이 더 넘치는 시인으로 알았다. 난 운동이 문학을 지배하는 시인이나, 감독, 작가를 별로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 때는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인간이 창조해 내는 모든 것들을 지금의 현실을 바꾸는데 사용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세상과 유리된 작품은 평론가들 속에서나 인정받을 뿐 실제 생명력은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2. 송경동의 새 시집(시집 뒷 날개를 보니 초판 1쇄는 2009년 12월 30일)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사 주길 바랐지만 도서관에서는 슬램덩크 전집을 산다고 하여 그냥, 내 돈으로 샀다. 물론 도서관에 기증할 생각이다.
3. 송경동 시인의 이번 시집은 물음들에 답함이지만 읽는 나에게는 새로운 물음들로 다가왔다. 내가 받은 몇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적는다.
이번 시집의 첫번째 시다. 앞부분의 통화기록 불법 수집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번 정리할 예정이니 그냥 넘어간다. 한가지만 짚고 가자면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놈들이 나쁘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스스로 조심하는 게 더 중요하다. 언젠가부터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문제에 대한 긴장의 끈이 조금은 느슨해진 듯한데 놈들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민감하면 민감할수록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놈들의 그런 대응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두가지는 증거인멸(웹상에서의 보안은 정말 중요하다), 의연대처(혹여나 실수로 그렇게 된다고 해도 의연함이 제일 중요하다.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대응, 한마디로 묵비). 이건 뭐 이정도로 넘어가자.
내가 눈을 떼기 어려웠던 부분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이다. 시에서는 경찰과 시인과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지만, 이 말은 보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정치사업, 조직사업은 그 대상을 잘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모든 사람사업은 결국 친해짐으로부터 시작한다. 친해져야 서로의 배움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운동에 대해서, 결국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된다. 이런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이야기가 들어가면 그게 바로 관료적인 사업이고 사람사업 실패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원칙이 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가이다. 그렇지 않다. 놈들은 우리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첨단 기술을 이용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고 한다. 어떤 존재의 밑바닥까지 모두 캘려고 하는 것 자체에서부터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하면, 애정을 가지면 그/그녀에 대해서 알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기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아니 배려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자기가 알고 싶은 것만 알아서도 안 되지만 알면서도 넘어가는 것도, 혹은 알고 싶지만 시간이 필요한 것도, 어떤 것은 결코 알 수 없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그게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사랑하는 과정이라 믿는다. 운동과 사랑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데, 각 관계 속에서 너무 몰라도, 너무 많이 알아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조직이라는 것은 너무 많이 알려고 강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조직과 자신이 일체화될 수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게 썩 좋다고만 볼 수는 없다. 이건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존재는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자기 자신에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말할 수 있는 자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즉, 침묵의 자유, 더 나아가 사상의 자유를 보장 받는 것이다. 헌법이 그런 취지로 만든 것은 아닐지 몰라도 요즘 시대에는 침묵의 자유가 실종되고 있다. 블로거, 트위터 등의 인터넷 도구들은 한 편으로는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세상의 소음을 증가시키기도 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사업하고 싶은가. 누군가를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은가. 뭐 이 두 질문 자체가 적당한 질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럴 마음이 있다면 사랑한다고 얘기하시라. 그렇지 않으면서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정말 '이게 뭐냐고'라는 말밖에.
4. 결코 사소하지만 않지만, 이젠 받아들이고 있다. 언젠가 원주에 갔을 때 그 곳에서 활동하던 분들이 나에게 "그래도 너는 선택지가 좀 더 있잖아. 하다가 잘 안되면 다른 곳으로 갈 여지도 있잖아."라며 조금은 농담섞인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겉으로는 바로 수긍하는 척 했지만, 그 뒤로 여러 번 그 비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운동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하는 것이라 배웠다. 또 그래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배움과 믿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한 때는 영광은 바라지도 않지만 이 혼탁한 운동판에서 누군가라도 길을 제시해 준다면 어떤 조직이든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구걸하듯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지혜를 조금이라도 훔쳐보겠다는 마음으로 다녔다. 큰 강을 건너는데 이 과정이 나름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배를 만들고 강에 그것을 띄우고 배에 탄 이후에도, 노를 저으며 수십번씩 출발한 강 건너편을 돌아보곤 했다. 못내 아쉬움인지 두려움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그랬다.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이 노를 젓게 했다. 조금 과장된 표현 아니냐고 놀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 바람들 덕에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나 역시 강을 건너왔다. 바람은 세상 저편에서 이편으로만 오는 게 아니다. 좁은 공간, 힘들지만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관계에서도 바람은 불어온다.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동지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바람을 내게 보내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바람이 불지 않는 동지는 착한 사람일 수는 있어도 오랫동안 옆에 붙어있고 싶은 존재는 아니다. 바람을 불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공부하고 실천하는 거 아니겠는가.
5. 아래 시는, 내가 존경하는 민경우 선배님에게 드리는 것이다.
이를 시를 읽으면서 제일 처음 생각난 사람이 바로 민경우 선배님이다. 특히, 주름의 수만큼 패배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두려움과 어쩔 수 없이 접은 그리움. 이 부분에서는 너무나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물론 현재 선배님이 그렇다기 보다는 내가 보는, 관찰하는 선배님이 그렇다는 것이다. 두려움과 그리움. 이게 마흔살을 넘은 운동 선배님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인 역시 1967년생, 올해 마흔네살로 사십대 중반이다. 시인도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겠는지.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사랑과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남이 그렇게 인정해 주거나 평가해 주는 게 아니라, 시인 혼자 생각해 보는 것이다. 민경우 선배님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몇 안되는 사람들이 선배님을 인정하거나 평가하는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선배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시면 된다. 그게 선배님이 늘상 이야기하시는 후배 키우기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그 후배들도 결국 사십대가 되고 수많은 두려움과 그리움에 봉착할 것이기 때문에.
6. 한 때, 계급성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던 시기가 있다. 막상 생각해 보면 계급성이 무엇인지도 도무지 감도 안오면서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 말이 그 무슨 멋있는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르지 않던 서정의 샘을 딱딱한 책으로 과학으로 이성으로 가득 메워버렸다는 시인의 자기 반성이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문제였지만 계급성은 망치질과 헐거운 삶에서만 움트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속도인데, 나 같은 먹물 운동권들은 그 속도가 느릴 뿐이라고 자위해 본다. 난 이렇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경제 공부에도 계급성이 있다" 라고 말이다. 난 그렇게 공부를 하고 싶다.
2. 송경동의 새 시집(시집 뒷 날개를 보니 초판 1쇄는 2009년 12월 30일)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사 주길 바랐지만 도서관에서는 슬램덩크 전집을 산다고 하여 그냥, 내 돈으로 샀다. 물론 도서관에 기증할 생각이다.
3. 송경동 시인의 이번 시집은 물음들에 답함이지만 읽는 나에게는 새로운 물음들로 다가왔다. 내가 받은 몇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적는다.
혜화 경찰서에서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러 가니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
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
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탐앤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
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도 했고
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러군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
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
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채층해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
이번 시집의 첫번째 시다. 앞부분의 통화기록 불법 수집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번 정리할 예정이니 그냥 넘어간다. 한가지만 짚고 가자면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놈들이 나쁘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스스로 조심하는 게 더 중요하다. 언젠가부터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문제에 대한 긴장의 끈이 조금은 느슨해진 듯한데 놈들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민감하면 민감할수록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놈들의 그런 대응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두가지는 증거인멸(웹상에서의 보안은 정말 중요하다), 의연대처(혹여나 실수로 그렇게 된다고 해도 의연함이 제일 중요하다.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대응, 한마디로 묵비). 이건 뭐 이정도로 넘어가자.
내가 눈을 떼기 어려웠던 부분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이다. 시에서는 경찰과 시인과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지만, 이 말은 보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정치사업, 조직사업은 그 대상을 잘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모든 사람사업은 결국 친해짐으로부터 시작한다. 친해져야 서로의 배움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운동에 대해서, 결국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된다. 이런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이야기가 들어가면 그게 바로 관료적인 사업이고 사람사업 실패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원칙이 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가이다. 그렇지 않다. 놈들은 우리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첨단 기술을 이용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고 한다. 어떤 존재의 밑바닥까지 모두 캘려고 하는 것 자체에서부터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하면, 애정을 가지면 그/그녀에 대해서 알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기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아니 배려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자기가 알고 싶은 것만 알아서도 안 되지만 알면서도 넘어가는 것도, 혹은 알고 싶지만 시간이 필요한 것도, 어떤 것은 결코 알 수 없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그게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사랑하는 과정이라 믿는다. 운동과 사랑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데, 각 관계 속에서 너무 몰라도, 너무 많이 알아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조직이라는 것은 너무 많이 알려고 강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조직과 자신이 일체화될 수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게 썩 좋다고만 볼 수는 없다. 이건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존재는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자기 자신에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말할 수 있는 자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즉, 침묵의 자유, 더 나아가 사상의 자유를 보장 받는 것이다. 헌법이 그런 취지로 만든 것은 아닐지 몰라도 요즘 시대에는 침묵의 자유가 실종되고 있다. 블로거, 트위터 등의 인터넷 도구들은 한 편으로는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세상의 소음을 증가시키기도 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사업하고 싶은가. 누군가를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은가. 뭐 이 두 질문 자체가 적당한 질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럴 마음이 있다면 사랑한다고 얘기하시라. 그렇지 않으면서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정말 '이게 뭐냐고'라는 말밖에.
4. 결코 사소하지만 않지만, 이젠 받아들이고 있다. 언젠가 원주에 갔을 때 그 곳에서 활동하던 분들이 나에게 "그래도 너는 선택지가 좀 더 있잖아. 하다가 잘 안되면 다른 곳으로 갈 여지도 있잖아."라며 조금은 농담섞인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겉으로는 바로 수긍하는 척 했지만, 그 뒤로 여러 번 그 비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을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으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녀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운동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하는 것이라 배웠다. 또 그래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배움과 믿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한 때는 영광은 바라지도 않지만 이 혼탁한 운동판에서 누군가라도 길을 제시해 준다면 어떤 조직이든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구걸하듯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지혜를 조금이라도 훔쳐보겠다는 마음으로 다녔다. 큰 강을 건너는데 이 과정이 나름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배를 만들고 강에 그것을 띄우고 배에 탄 이후에도, 노를 저으며 수십번씩 출발한 강 건너편을 돌아보곤 했다. 못내 아쉬움인지 두려움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그랬다.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이 노를 젓게 했다. 조금 과장된 표현 아니냐고 놀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 바람들 덕에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나 역시 강을 건너왔다. 바람은 세상 저편에서 이편으로만 오는 게 아니다. 좁은 공간, 힘들지만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관계에서도 바람은 불어온다.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동지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바람을 내게 보내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바람이 불지 않는 동지는 착한 사람일 수는 있어도 오랫동안 옆에 붙어있고 싶은 존재는 아니다. 바람을 불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공부하고 실천하는 거 아니겠는가.
5. 아래 시는, 내가 존경하는 민경우 선배님에게 드리는 것이다.
주름
문득, 주름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마흔 넘다보니 나도 참 많은 주름이 졌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이 고여 있는
골도 있다 왜 그랬을까?
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첩첩한 고랑도 있다
여름 볕처럼 쨍쨍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지만
생은 수많은 슬픔과 아픔들이 접히는
주름산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주름의 수만큼
나는 패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두려움도 많았고
주름이 늘어버린 만큼 알아서 접은 그리움도 많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주름들이
내 삶의 나이테였다 하나하나의 굴곡이
때론 나를 키우는 굳건한 성장통, 더 넓게
나를 밀어가는 물결무늬글어었다 주름이
참 곱다라는 말뜻을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산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수많은 아픔의 고랑과 슬픔의 이랑들을 모아
어떤 사랑과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것일 거라고 혼자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를 시를 읽으면서 제일 처음 생각난 사람이 바로 민경우 선배님이다. 특히, 주름의 수만큼 패배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두려움과 어쩔 수 없이 접은 그리움. 이 부분에서는 너무나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물론 현재 선배님이 그렇다기 보다는 내가 보는, 관찰하는 선배님이 그렇다는 것이다. 두려움과 그리움. 이게 마흔살을 넘은 운동 선배님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인 역시 1967년생, 올해 마흔네살로 사십대 중반이다. 시인도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겠는지.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사랑과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남이 그렇게 인정해 주거나 평가해 주는 게 아니라, 시인 혼자 생각해 보는 것이다. 민경우 선배님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몇 안되는 사람들이 선배님을 인정하거나 평가하는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선배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시면 된다. 그게 선배님이 늘상 이야기하시는 후배 키우기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그 후배들도 결국 사십대가 되고 수많은 두려움과 그리움에 봉착할 것이기 때문에.
6. 한 때, 계급성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던 시기가 있다. 막상 생각해 보면 계급성이 무엇인지도 도무지 감도 안오면서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 말이 그 무슨 멋있는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서정에도 계급성이 있다
한땐 내 가슴 마당이
잡부속소보다 넓으리라 했다
간이옥 주점 창살방보단 밝으리라 했고
발전기 소리 웅웅거리는
작업장보단 조용하리라 했다
목수도 칠도 방통도
하빠리 기레빠시 인생들
모두 다 내게로 오라 했다
헐거운 삶들 가슴에 들여 살며
달방 주인처럼 신이 났다
하지만
세월 흘러 돌아보거니
난 그 마르지 않던 서정의 샘을
딱딱한 책으로 과학으로
이성으로 가득 메워버렸다
낮술 거나한 노을이
황금들녘 퍼져 일어나지 못해도
아무도 그를 깨우지 않던
따사롭던 내 여름날
가난했던 서정이여
방통 : 콘크리트 가설이 된 바닥 마무리 작업을 하는 이들.
하빠리 : 기준치에 미달한 하급의 것들.
기레빠시 : 용도에 따라 쓰고 난 후 쓸모없이 남은 자재들.
마르지 않던 서정의 샘을 딱딱한 책으로 과학으로 이성으로 가득 메워버렸다는 시인의 자기 반성이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문제였지만 계급성은 망치질과 헐거운 삶에서만 움트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속도인데, 나 같은 먹물 운동권들은 그 속도가 느릴 뿐이라고 자위해 본다. 난 이렇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경제 공부에도 계급성이 있다" 라고 말이다. 난 그렇게 공부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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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미 2010/02/19 18:50
- 뒤 늦게 봤네....
-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30대는 간명한 신념이 있었는데.....지금은 어떤거지...생각이 보다 복잡해지고 섣부른 결론을 자제하고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관찰하게 되는 반면 저돌적인 행동에는 서툴러졌는데...
이게 좋아진건가 나쁘진건가, 아니면 나이가 들면 다 그렇게 되는건가...
- 05년부터 슬럼프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최근 2010년 6월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와 관련해서 말이 많다. 핵심은 결국 진보개혁진영의 단합과 연대다. 한마디로 힘을 모아서 MB정부와 한나라당에게 큰 타격을 주자는 이야기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이후 이전의 민주연립정권수립 노선(이것의 핵심이 비판적 지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된 주고 받기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당시에는 진보정당도 없었으니까 주고 받을은 주체가 없었던 것도 이 노선을 비판적 지지 노선으로 보는 경향이 많을 수밖에 없다. 뭐 나 역시 아직 정확히 평가하지는 못하겠다.)은 폐기되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2000년 초반에 그렇게 전선과 당에 대한 학습 및 토론, 논쟁을 많이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소위 민족통일전선 노선(당시에는 이 말과 독자집권 노선이 동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이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이라고 하는 독자집권 노선을 가지게 된다. 노선을 새롭게 세웠으니 이제는 실행하면 되는 일이었다. 때마침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5% 정도의 지지를 받아 10명의 국회의원을 가지게 된다. 그 때 국회 앞에서 민주노동당 원내 진입 기자회견 시 눈물을 흘리던 단병호 의원과 민주노동당의 상징인 권영길 의원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며 나 역시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분열되었고 지금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다.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우리가 수렁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 그 수렁으로 들어갔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에 진보진영에도 기존 정치권과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반칙과 파행이 상당히 많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당대회에서 나는 그것을 온 몸으로 알 수 있었다.(참고로 난 얼마 전까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이었다.) 화려하거나 어눌하거나 제각기 이야기를 하지만 현재의 논쟁구도를 단순 명쾌하게 정리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다함께의 김인식 동지였다.(현재 서울 중구 위원장이다. 노선이 조금 다르긴 해도 난 김인식 동지를 대체로 좋아한다.) 핵심은 두가지인데, 진보개혁진형의 단합과 연대에 있어서 이 단합과 연대가 상수(절실한가)냐 변수(부차적인 문제인가)냐 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만약 단합과 연대를 하는데 있어서 그 폭은 어디까지인가의 문제이다. 더 구체적으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포함되는가 아닌가의 문제라는 점이다.
내 견해는 단합과 연대는 상수가 되어야 하며 그 폭은 열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지역과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디만 전반적으로 보면 민주당, 국민참여당과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인식 동지는 단합과 연대가 상수지만 그 폭은 명확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진보세력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하튼 상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니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 된다.
최근 2명의 국회의원이 주장하는 글, 영상을 보았다. 모두 위에서 이야기한 단합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한 명은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이고 또 한 명은 민주당은 김부겸 의원이다. 큰 공감을 얻었다. 난 이런 정치인이 좋다. 지지한다. 이들의 글을 아래에 링크한다.
이정희 의원
"민노당이 먼저 연대를 깨는 일은 없을 것" 프레시안 1월 20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0105207&Section=01
"한나라당 몽땅 떨어뜨리는 게 제1 목표" 오마이뉴스 1월 20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05156
김부겸 의원
2010 '선거연합', 2012 '연정' 프레시안 1월 19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19114447§ion=01
"선거연합은 양보가 아닌 더 많은 승리" 1월 21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1110205§ion=01
물론 반론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난 우리 당의 이정희 의원도 지지하지만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성 등의 정치인도 상당히 지지한다. 과거 회귀식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가치연대를 실현하자는 노회찬 대표의 주장도 하나씩 뜯어보면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난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은, 우리가 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 판 거친 싸움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선수들이 드디어 링에 올라왔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링에는 우리가 없다. 여러 명이 싸울 때는 전략과 전술을 잘 구사하여 싸워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 싸움판에 있지 않다. 따라서 싸움판에 들어가야 한다. 단합과 연대가 상수인 아유는 우리가 링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즉, 주먹 날릴 상대방 선수도 없는 링 밖에서 같은 편끼리 주먹을 날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것도 죽자살자 하면서도 말이다. 이건 좀 곤란하다.
그럼에도 난, 아직 이 상황을, 또한 이 상황에서 우리가 내릴 결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들을 이전의 민주연립정권 노선과 비판적 지지와 무엇이 다르냐고 물어볼 때 그걸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계속 고민 중이다.
결론은 이정희, 김부겸과 같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주장에 진정성이 느껴지는 국회의원이 좋다는 말이다.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이후 이전의 민주연립정권수립 노선(이것의 핵심이 비판적 지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된 주고 받기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당시에는 진보정당도 없었으니까 주고 받을은 주체가 없었던 것도 이 노선을 비판적 지지 노선으로 보는 경향이 많을 수밖에 없다. 뭐 나 역시 아직 정확히 평가하지는 못하겠다.)은 폐기되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2000년 초반에 그렇게 전선과 당에 대한 학습 및 토론, 논쟁을 많이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소위 민족통일전선 노선(당시에는 이 말과 독자집권 노선이 동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이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이라고 하는 독자집권 노선을 가지게 된다. 노선을 새롭게 세웠으니 이제는 실행하면 되는 일이었다. 때마침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5% 정도의 지지를 받아 10명의 국회의원을 가지게 된다. 그 때 국회 앞에서 민주노동당 원내 진입 기자회견 시 눈물을 흘리던 단병호 의원과 민주노동당의 상징인 권영길 의원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며 나 역시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분열되었고 지금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다.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우리가 수렁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 그 수렁으로 들어갔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에 진보진영에도 기존 정치권과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반칙과 파행이 상당히 많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당대회에서 나는 그것을 온 몸으로 알 수 있었다.(참고로 난 얼마 전까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이었다.) 화려하거나 어눌하거나 제각기 이야기를 하지만 현재의 논쟁구도를 단순 명쾌하게 정리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다함께의 김인식 동지였다.(현재 서울 중구 위원장이다. 노선이 조금 다르긴 해도 난 김인식 동지를 대체로 좋아한다.) 핵심은 두가지인데, 진보개혁진형의 단합과 연대에 있어서 이 단합과 연대가 상수(절실한가)냐 변수(부차적인 문제인가)냐 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만약 단합과 연대를 하는데 있어서 그 폭은 어디까지인가의 문제이다. 더 구체적으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포함되는가 아닌가의 문제라는 점이다.
내 견해는 단합과 연대는 상수가 되어야 하며 그 폭은 열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지역과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디만 전반적으로 보면 민주당, 국민참여당과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인식 동지는 단합과 연대가 상수지만 그 폭은 명확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진보세력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하튼 상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니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 된다.
최근 2명의 국회의원이 주장하는 글, 영상을 보았다. 모두 위에서 이야기한 단합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한 명은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이고 또 한 명은 민주당은 김부겸 의원이다. 큰 공감을 얻었다. 난 이런 정치인이 좋다. 지지한다. 이들의 글을 아래에 링크한다.
이정희 의원
"민노당이 먼저 연대를 깨는 일은 없을 것" 프레시안 1월 20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0105207&Section=01
"한나라당 몽땅 떨어뜨리는 게 제1 목표" 오마이뉴스 1월 20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05156
김부겸 의원
2010 '선거연합', 2012 '연정' 프레시안 1월 19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19114447§ion=01
"선거연합은 양보가 아닌 더 많은 승리" 1월 21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1110205§ion=01
물론 반론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난 우리 당의 이정희 의원도 지지하지만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성 등의 정치인도 상당히 지지한다. 과거 회귀식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가치연대를 실현하자는 노회찬 대표의 주장도 하나씩 뜯어보면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난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은, 우리가 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 판 거친 싸움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선수들이 드디어 링에 올라왔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링에는 우리가 없다. 여러 명이 싸울 때는 전략과 전술을 잘 구사하여 싸워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 싸움판에 있지 않다. 따라서 싸움판에 들어가야 한다. 단합과 연대가 상수인 아유는 우리가 링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즉, 주먹 날릴 상대방 선수도 없는 링 밖에서 같은 편끼리 주먹을 날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것도 죽자살자 하면서도 말이다. 이건 좀 곤란하다.
그럼에도 난, 아직 이 상황을, 또한 이 상황에서 우리가 내릴 결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들을 이전의 민주연립정권 노선과 비판적 지지와 무엇이 다르냐고 물어볼 때 그걸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계속 고민 중이다.
결론은 이정희, 김부겸과 같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주장에 진정성이 느껴지는 국회의원이 좋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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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드는 생각을 간단히 정리한다.
1. 정말 잘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닥치는대로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키는대로(이 말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당시에는 후배의 입장이기도 했고 내가 주류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다 했다.(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비관하지 않았다. 좌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단히 슬펐다. 슬픈 이유는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상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내 의문은 이거였다.
2. 철학은 무엇인가. 특툭 치면 오래된 먼지냄새가 나오는 책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세계관을 주는 학문'.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세계에 대한 견해와 관점'. 이 견해와 관점은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학습을 해야하고 투쟁을 해야하고, 조직생활도 해야한다. 그래서 '투쟁하면서 학습하라'. '생활하면서 학습하라'는 등의 구호가 많았다. 무엇을 학습할 것인가. 참 많았다. 요즘에는 경제가 대세인 듯 한다. 하지만 내 대답은 철학이다. 우리는 흔히 말을 자주 바꾸는 정치인을 두고 정치철학이 없는 정치인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가진자들에게만 복무하고 공유와 연대에 대한 마음 씀씀이를(이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가지지 못한 존재에 대해 철학이 없는 존재라고도 한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철학이 없는 의사, 변호가, 검사, 판사 등이다(물론 이들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은 결코 아니다).
3. 언젠가부터 나는 철학이 없는 운동권이 되어 버린 듯 하다. 그리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주변에서 이 철학의 부재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렵다. 대학원 준비를 위해 전투적으로 경제학원론 학습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학습을 하면서 어떤 느낌인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나는 내가 공부하는 책과 일대일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주류경제학은 참으로 심플하다.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심플하다. 왜 나에게 그 수식과 논리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그건 농담으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개량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어서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철학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물론 즉자적으로 주류경제학의 논리와 구조에 대해서 비판의 편린들을 쏟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스스로가 우스워지는 것을 느낀다.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깊이 없는 비판과 즉자적인 대응만이 남은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4. 나는 철학이 우스워지는 시대는 인간이 우스워지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느 집단과 세력이 철학을 깊이 있게 고려하지 않을 때 집단의 빛나는 비전 역시 깊이 없는 행위들로 인해 상쇄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5. 가야할 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잘 못 되었다.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은 전술일 수밖에 없다. 어디, 바로 방향이 전략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여전히 그 방향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건 개인에게도 그렇고, 내가 관계맺고 있는 많은 것들과도 마찬가지이다.
6. 철학의 부재 혹은 철학의 보잘 것 없음에 슬픔을 느낀다. 그래서 여전히 내 질문은 다시 돌아오게 된다.
1. 정말 잘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닥치는대로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키는대로(이 말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당시에는 후배의 입장이기도 했고 내가 주류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다 했다.(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비관하지 않았다. 좌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단히 슬펐다. 슬픈 이유는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상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내 의문은 이거였다.
사싱이 틀린 건가. 구현을 못하는 건가.
출처 http://starriness.egloos.com/271575
2. 철학은 무엇인가. 특툭 치면 오래된 먼지냄새가 나오는 책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세계관을 주는 학문'.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세계에 대한 견해와 관점'. 이 견해와 관점은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학습을 해야하고 투쟁을 해야하고, 조직생활도 해야한다. 그래서 '투쟁하면서 학습하라'. '생활하면서 학습하라'는 등의 구호가 많았다. 무엇을 학습할 것인가. 참 많았다. 요즘에는 경제가 대세인 듯 한다. 하지만 내 대답은 철학이다. 우리는 흔히 말을 자주 바꾸는 정치인을 두고 정치철학이 없는 정치인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가진자들에게만 복무하고 공유와 연대에 대한 마음 씀씀이를(이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가지지 못한 존재에 대해 철학이 없는 존재라고도 한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철학이 없는 의사, 변호가, 검사, 판사 등이다(물론 이들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은 결코 아니다).
3. 언젠가부터 나는 철학이 없는 운동권이 되어 버린 듯 하다. 그리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주변에서 이 철학의 부재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렵다. 대학원 준비를 위해 전투적으로 경제학원론 학습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학습을 하면서 어떤 느낌인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나는 내가 공부하는 책과 일대일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주류경제학은 참으로 심플하다.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심플하다. 왜 나에게 그 수식과 논리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그건 농담으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개량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어서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철학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물론 즉자적으로 주류경제학의 논리와 구조에 대해서 비판의 편린들을 쏟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스스로가 우스워지는 것을 느낀다.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깊이 없는 비판과 즉자적인 대응만이 남은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4. 나는 철학이 우스워지는 시대는 인간이 우스워지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느 집단과 세력이 철학을 깊이 있게 고려하지 않을 때 집단의 빛나는 비전 역시 깊이 없는 행위들로 인해 상쇄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5. 가야할 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잘 못 되었다.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은 전술일 수밖에 없다. 어디, 바로 방향이 전략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여전히 그 방향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건 개인에게도 그렇고, 내가 관계맺고 있는 많은 것들과도 마찬가지이다.
6. 철학의 부재 혹은 철학의 보잘 것 없음에 슬픔을 느낀다. 그래서 여전히 내 질문은 다시 돌아오게 된다.
사상이 틀린 건가. 구현을 못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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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권 2010/01/21 01:35
그렇군요..~~~...조금은 고민이 이해되기도 합니다만....물론 철학이 대단히 중요하고 결국은 그리고 귀착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철학은 책이나 뭐 이런데서 나온다기 보다도...사람들의 생활과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천착에서 나올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내가 30살때 그토록 '평범한 생활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이기도 했지요...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소시민적 행태라고 터부시하고 속세를 떠나는 순간 철학은 공허해지지요..
근대 철학은 그랬던것 같습니다....객관세계의 법칙성에 대한 이해....그러나 지금의 철학은 인생관을 정립하는데서 부터 출발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세계관-인생관-가치관-행동양식의 순서가 아니라 인생관-세계관 -가치관-행동방향 뭐 이런 순서일거라는 거죠...
현재까지 토론회 발표자 신청한 사람
1. 이정환 미디어 오늘 기자
블로그 http://www.leejeonghwan.com/
트위터 @leejeonghwan
2. 이성규 테터앤미디어 미디어팀장
블로그 http://blog.ohmynews.com/dangun76/
트위터 @dangun76
3. 석진혁 청년유니온(준) 간사
블로그 http://blog.naver.com/hero990926
트위터 @sactionmask
4. 정다혜 2010년 연세대학교 신임 총학생회장
블로그 곧 올리겠음.
트위터 곧 올리겠음.
5. 김현 머니해킹 저자
블로그 http://www.blog.lawfully.kr
야심차게 기획한 토론회인데 당일 사람들이 별로 안오면 어쩌냐 하는 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을 지경입니다.
우리는 나 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으로 기획했습니다. 또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학습을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23일) 오후 2시 꼭 와 주세요~
분명 재미있을 겁니다...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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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들의 2010 경제 쾌도난담>
우리가 웃고 즐기는 것이 바로 한국 문화이고 우리가 배우는 것이 한국 교육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땀흘려 일하는 것이 한국 경제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경제라는 단어에는 소중한 '땀내음'이 아닌 어렵고 복잡한 수식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수식으로 가득찬 경제가 아니라 '땀내음'과 우리의 노동이 들어간 대한민국 경제의 '생얼'을 이야기합니다.
보통사람 모두를 위한, 대한민국 99%를 위한 한국 경제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일과 우리의 땀이 경제가 되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블로거들의 2010 경제 쾌도난담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과 테터앤미디어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로 최근 한파와도 같이 차가운 2010 한국경제를 블로거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토론회입니다. 형식적이고 무거운 토론회가 아닌 가까운 친구들 사이의 수다처럼 재미있는 토론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전문적인 이야기보다 각자의 기쁨과 슬픔, 생활이 녹아있는 경제가 진짜 경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땀흘려 일하는 블로거, 여전히 일하기 위해 노력하는 블로거. 누구든 좋습니다.
생활이 뭍어나는 경제이야기를 하고픈 블로거라면 누구나 환영입니다.
블로거, 당신의 거침없는 웃음, 눈물, 생활의 상상력을 모십니다.
현재까지(1월 19일) 발표 신청해 주신 분들입니다.
1. 이정환 미디어 오늘 기자
블로그 http://www.leejeonghwan.com/
트위터 @leejeonghwan
2. 이성규 테터앤미디어 미디어팀장
블로그 http://blog.ohmynews.com/dangun76/
트위터 @dangun76
3. 석진혁 청년유니온(준) 간사
블로그 http://blog.naver.com/hero990926
트위터 @sactionmask
4. 정다혜 2010년 연세대학교 신임 총학생회장
블로그 곧 올리겠음.
트위터 곧 올리겠음.
5. 김현 머니해킹 저자
블로그 http://www.blog.lawfully.kr
토론회는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토론회 참가는 발표자 참가와 일반 참가가 있습니다.
<발표신청>
: 10분 발표 분량의 PPT문서를 슬라이드셰어 이용하여 포스팅하고 메타블로그(http://blogfestival.kr)로 발행
: 메타블로그에 가입해야 합니다. 포스팅 시 태그 ‘발표자료’ 삽입
: 1월 23일 토론회 전까지 참가신청을 받고 웹상에서 토론 진행(댓글, 트랙백 등)
: 트위터를 통해 질문도 받음
<참석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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