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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빵왕 김탁구'라는 드라마를 애청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같이 사는 후배가 하는 말

"형... 김탁구에 민경우 선배님 책이 나왔어요..."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라 캡처를 해 달라고 했는데 그 사이에 벌써 기사로 나옴. 아래는 해당 기사. 기사를 원래 링크만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전체를 인용함. 기사보기

[스포츠조선 T-뉴스 이다정 기자] KBS 2TV 수목극 '제 빵왕 김탁구'에 옥에 티가 또 등장했다. 시청률 30%를 넘는 인기만큼 네티즌들은 세밀한 옥에 티를 찾아내 "대단하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제빵왕 김탁구'의 관련 게시판에는 새로운 옥에 티를 찾아낸 네티즌이 글을 올렸다. 해당 장면은 민주화 운동에 몸담은 신유경(유진)이 대학교 아지트에서 전단을 준비하는 장면으로, 카메라에는 '민족주의 그리고 우리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책이 중앙에 잡혔다.

'군부독재 타도,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플랜 카드와 함께 보여진 책의 제목은 1980년대 후반인 극중 상황에서 대학생들의 민주화 의식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검색 결과 '민족주의 그리고 우리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책은 2007년 초반에 출간된 것으로, 드라마 속 시대보다 20년 뒤인 '미래의 책'이 드라마 안에 등장하게 된 셈이다.

'제빵왕 김탁구'의 옥에 티는 이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팔봉빵집에서 일하는 김탁구가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밀가루 포대의 유통기한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유통기한은 2011년 6월로 극중 상황에 비교하면 유통기한이 무려 30년 가까이 되는 격이다. 이처럼 큰 웃음을 준 '옥에 티'는 결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의 관심을 반증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증샷도 올라왔는데. 이미지를 보니 떡 하고. 정말 민경우 선배님의 책이 보이는 게 아닌가.


티즌도 대단하지만, 그 많고 많은 책 중 하필이면 경우 형님의 책이 책상에 놓여있다니. 이번 기회에 네티즌 수사대가 민경우 선배에 대해서 탐구하여 올려주면, 이것 또한 엄청난 재미. 여하튼 신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트위터에다가 한 마디.


마음 같아서는. 진보의 재구성이 나왔다면 더 재미있었겠다는 생각. 여하튼 신기. 이 일을 계기로 책이 좀 더 팔린다면 경우형 살림에 조금 보탬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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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jangck.tistory.com BlogIcon 당분인간 2010/07/15 12:06

    하지만... 작가도 저 책이 운동권 책이라고 이미 인정했다는거죠...ㅋ

  2. 백치미 2010/07/15 14:24

    - 나도 웃었다.

  3. 2010/07/15 18:04

    비밀댓글입니다

  4. Favicon of http://jamilaswan.egloos.com BlogIcon 미운오리 2010/07/19 14:00

    빵~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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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사 추모제에서 시인 송경동을 몇 번 보았다. 사실 그 때는 그냥 그런 시인으로 생각했다. 문학적 재능보다는 운동에 대한 열정이 더 넘치는 시인으로 알았다. 난 운동이 문학을 지배하는 시인이나, 감독, 작가를 별로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 때는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인간이 창조해 내는 모든 것들을 지금의 현실을 바꾸는데 사용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세상과 유리된 작품은 평론가들 속에서나 인정받을 뿐 실제 생명력은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2. 송경동의 새 시집(시집 뒷 날개를 보니 초판 1쇄는 2009년 12월 30일)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사 주길 바랐지만 도서관에서는 슬램덩크 전집을 산다고 하여 그냥, 내 돈으로 샀다. 물론 도서관에 기증할 생각이다.

출처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2310X

3. 송경동 시인의 이번 시집은 물음들에 답함이지만 읽는 나에게는 새로운 물음들로 다가왔다. 내가 받은 몇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적는다.

혜화 경찰서에서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러 가니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
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
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탐앤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
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도 했고
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러군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
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
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채층해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

이번 시집의 첫번째 시다. 앞부분의 통화기록 불법 수집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번 정리할 예정이니 그냥 넘어간다. 한가지만 짚고 가자면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놈들이 나쁘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스스로 조심하는 게 더 중요하다. 언젠가부터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문제에 대한 긴장의 끈이 조금은 느슨해진 듯한데 놈들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민감하면 민감할수록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놈들의 그런 대응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두가지는 증거인멸(웹상에서의 보안은 정말 중요하다), 의연대처(혹여나 실수로 그렇게 된다고 해도 의연함이 제일 중요하다.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대응, 한마디로 묵비). 이건 뭐 이정도로 넘어가자.


내가 눈을 떼기 어려웠던 부분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이다. 시에서는 경찰과 시인과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지만, 이 말은 보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정치사업, 조직사업은 그 대상을 잘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모든 사람사업은 결국 친해짐으로부터 시작한다. 친해져야 서로의 배움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운동에 대해서, 결국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된다. 이런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이야기가 들어가면 그게 바로 관료적인 사업이고 사람사업 실패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원칙이 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가이다. 그렇지 않다. 놈들은 우리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첨단 기술을 이용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고 한다. 어떤 존재의 밑바닥까지 모두 캘려고 하는 것 자체에서부터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하면, 애정을 가지면 그/그녀에 대해서 알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기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아니 배려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자기가 알고 싶은 것만 알아서도 안 되지만 알면서도 넘어가는 것도, 혹은 알고 싶지만 시간이 필요한 것도, 어떤 것은 결코 알 수 없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그게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사랑하는 과정이라 믿는다. 운동과 사랑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데, 각 관계 속에서 너무 몰라도, 너무 많이 알아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조직이라는 것은 너무 많이 알려고 강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조직과 자신이 일체화될 수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게 썩 좋다고만 볼 수는 없다. 이건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존재는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자기 자신에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말할 수 있는 자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즉, 침묵의 자유, 더 나아가 사상의 자유를 보장 받는 것이다. 헌법이 그런 취지로 만든 것은 아닐지 몰라도 요즘 시대에는 침묵의 자유가 실종되고 있다. 블로거, 트위터 등의 인터넷 도구들은 한 편으로는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세상의 소음을 증가시키기도 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사업하고 싶은가. 누군가를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은가. 뭐 이 두 질문 자체가 적당한 질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럴 마음이 있다면 사랑한다고 얘기하시라. 그렇지 않으면서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정말 '이게 뭐냐고'라는 말밖에.

4. 결코 사소하지만 않지만, 이젠 받아들이고 있다. 언젠가 원주에 갔을 때 그 곳에서 활동하던 분들이 나에게 "그래도 너는 선택지가 좀 더 있잖아. 하다가 잘 안되면 다른 곳으로 갈 여지도 있잖아."라며 조금은 농담섞인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겉으로는 바로 수긍하는 척 했지만, 그 뒤로 여러 번 그 비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을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으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녀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운동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하는 것이라 배웠다. 또 그래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배움과 믿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한 때는 영광은 바라지도 않지만 이 혼탁한 운동판에서 누군가라도 길을 제시해 준다면 어떤 조직이든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구걸하듯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지혜를 조금이라도 훔쳐보겠다는 마음으로 다녔다. 큰 강을 건너는데 이 과정이 나름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배를 만들고 강에 그것을 띄우고 배에 탄 이후에도, 노를 저으며 수십번씩 출발한 강 건너편을 돌아보곤 했다. 못내 아쉬움인지 두려움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그랬다.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이 노를 젓게 했다. 조금 과장된 표현 아니냐고 놀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 바람들 덕에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나 역시 강을 건너왔다. 바람은 세상 저편에서 이편으로만 오는 게 아니다. 좁은 공간, 힘들지만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관계에서도 바람은 불어온다.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동지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바람을 내게 보내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바람이 불지 않는 동지는 착한 사람일 수는 있어도 오랫동안 옆에 붙어있고 싶은 존재는 아니다. 바람을 불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공부하고 실천하는 거 아니겠는가.


5. 아래 시는, 내가 존경하는 민경우 선배님에게 드리는 것이다.

주름

문득, 주름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마흔 넘다보니 나도 참 많은 주름이 졌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이 고여 있는
골도 있다 왜 그랬을까?
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첩첩한 고랑도 있다

여름 볕처럼 쨍쨍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지만
생은 수많은 슬픔과 아픔들이 접히는
주름산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주름의 수만큼
나는 패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두려움도 많았고
주름이 늘어버린 만큼 알아서 접은 그리움도 많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주름들이
내 삶의 나이테였다 하나하나의 굴곡이
때론 나를 키우는 굳건한 성장통, 더 넓게
나를 밀어가는 물결무늬글어었다 주름이
참 곱다라는 말뜻을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산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수많은 아픔의 고랑과 슬픔의 이랑들을 모아
어떤 사랑과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것일 거라고 혼자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를 시를 읽으면서 제일 처음 생각난 사람이 바로 민경우 선배님이다. 특히, 주름의 수만큼 패배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두려움과 어쩔 수 없이 접은 그리움. 이 부분에서는 너무나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물론 현재 선배님이 그렇다기 보다는 내가 보는, 관찰하는 선배님이 그렇다는 것이다. 두려움과 그리움. 이게 마흔살을 넘은 운동 선배님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인 역시 1967년생, 올해 마흔네살로 사십대 중반이다. 시인도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겠는지.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사랑과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남이 그렇게 인정해 주거나 평가해 주는 게 아니라, 시인 혼자 생각해 보는 것이다. 민경우 선배님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몇 안되는 사람들이 선배님을 인정하거나 평가하는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선배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시면 된다. 그게 선배님이 늘상 이야기하시는 후배 키우기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그 후배들도 결국 사십대가 되고 수많은 두려움과 그리움에 봉착할 것이기 때문에.


6. 한 때, 계급성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던 시기가 있다. 막상 생각해 보면 계급성이 무엇인지도 도무지 감도 안오면서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 말이 그 무슨 멋있는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서정에도 계급성이 있다

한땐 내 가슴 마당이
잡부속소보다 넓으리라 했다
간이옥 주점 창살방보단 밝으리라 했고
발전기 소리 웅웅거리는
작업장보단 조용하리라 했다

목수도 칠도 방통도
하빠리 기레빠시 인생들
모두 다 내게로 오라 했다
헐거운 삶들 가슴에 들여 살며
달방 주인처럼 신이 났다

하지만
세월 흘러 돌아보거니
난 그 마르지 않던 서정의 샘을
딱딱한 책으로 과학으로
이성으로 가득 메워버렸다

낮술 거나한 노을이
황금들녘 퍼져 일어나지 못해도
아무도 그를 깨우지 않던
따사롭던 내 여름날
가난했던 서정이여

방통 : 콘크리트 가설이 된 바닥 마무리 작업을 하는 이들.
하빠리 : 기준치에 미달한 하급의 것들.
기레빠시 : 용도에 따라 쓰고 난 후 쓸모없이 남은 자재들.

마르지 않던 서정의 샘을 딱딱한 책으로 과학으로 이성으로 가득 메워버렸다는 시인의 자기 반성이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문제였지만 계급성은 망치질과 헐거운 삶에서만 움트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속도인데, 나 같은 먹물 운동권들은 그 속도가 느릴 뿐이라고 자위해 본다. 난 이렇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경제 공부에도 계급성이 있다" 라고 말이다. 난 그렇게 공부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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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jamilaswan.egloos.com BlogIcon 미운오리 2010/02/08 18:51

    시가 좋네요. ^ ^ 저도 오랜만에 시집한권 읽어봐야겠는걸요! ^ ^

  2. 백치미 2010/02/19 18:50

    - 뒤 늦게 봤네....

    -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30대는 간명한 신념이 있었는데.....지금은 어떤거지...생각이 보다 복잡해지고 섣부른 결론을 자제하고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관찰하게 되는 반면 저돌적인 행동에는 서툴러졌는데...
    이게 좋아진건가 나쁘진건가, 아니면 나이가 들면 다 그렇게 되는건가...

    - 05년부터 슬럼프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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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hanibook.co.kr/book/list.php?ran=4_1

지난 11월 5일로 새사연에서 일하게 된 지 딱 1달이 되었다. 내가 새사연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몇 가지이다.

"거기에서 뭐 하나?"
"일은 할 만한가?"
"와.. 의외다. 너가 거기에서 일하다니..."

1. 내가 새사연에서 하는 일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들어올 때는 현재 새사연 사이트 개편 기획 중이라 기획이 끝난 후 실제 개편을 할 때 프로그래머와 새사연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기로 했다. 그리곤 새사연의 회원 사업에 대한 것이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평가해보면 아직 내가 새사연에서 한 일은 없다. 사이트 개편 기획은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고, 회원 사업은 지난 주 목요일에 독자모임(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하고 싶지만 엄격하게 평가하면 이도저도 아닌 모임 같은게 되었다)을 시작했다.

2. 아직 구체적으로 한 일이 없어서. 물론 그렇다고 출근해서 마냥 노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는 블로그 글을 읽고, 경제 공부도 조금씩 한다. 일할 만하냐고? 일할 만하다. 새사연에 약간 미안한 마음도 있다. 여하튼 날 믿고 쓰는 것인데 이렇다 할 성과나 시도를 해 보지 못해서 그렇다. 마음 속으로는 '경제 공부를 많이 해야하는데'라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생각처럼 아주 잘 되는 것은 아니다.

3. 새사연에서 일하는 게 의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다. 아마 나와 같이 학생운동을 했던 친구들이 내 성격이나 습성을 알기에 새사연이라는 연구소와 내가 맞겠냐는 의미일 것이다. 나 스스로도 여기서 일하는 것이 맞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월급을 주고 하루 중 8시간 정도는 한 자리에 앉아서 놀던 공부하던 글을 쓰던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이게 중요하다.


궁금하지도 않겠지만 새사연에서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생산된 보고서를 교정(퇴고라고 생각하면 된다. 근데 지난 번 공개했듯이 KBS한국어능력시험에서 내 국어 실력은 그야말로 뽀록났다.)보고 제목(헤드라인과 중간제목)을 뽑는 일이다. 신문사나 잡지사의 편집기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근데 이거 쉽지 않다. 글 쓰는 것과 제목 뽑는 문제가 관계 없지는 않지만 다른 차원의 것으로 느껴진다. 보고서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잘 보여줄 수 있는가의 측면과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읽고 싶은 글로 만드는가의 측면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전자를 진지하고 논문쓰기 식의 느낌이라면 후자는 인터넷에서 흔히 말하는 낚시밥을 던지는 일과도 같다. 때론 논리적인 제목을 뽑기도 해야하지만 그렇게만 하면 영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후자 측면을 강조하기에는 내 감각이 너무 떨어진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1차로 교정, 제목뽑기를 한 후 다른 한 분이 다시 검토해 준다. 내가 5개의 보고서를 교정, 제목뽑기를 하면 초기에는 대부분이 다 다시 바뀌었고 지금은 헤드라인 정도가 바뀌곤 한다. 내가 넣은 제목이 다시 바뀌었을 때 기분이 어떠냐고. 직접 느껴보니 언잖은 생각보다는 내 국어 실력이 정확히 보여 오히려 창피하고 부끄러움이 더 많다. 헤드라인과 중간제목을 어떻게 뽑는가의 문제로 글이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난 많이 배우고 있다.

그 한 분이 나에게 권한 책이 있다. 한겨레21 편집기자로 입사하여 편집장까지 하다가 지금은 씨네21 편집장을 하고 있는 고경태 기자가 쓴, '유혹하는 에디터'이다. 책은 분령이 350페이지 정도지만 사진도 많고 글 자체가 흥미로워서 쉽게 읽힌다. 주말에 다 읽었다.

이 책을 보고 나서, 학생운동할 때의 내 글쓰기가 감정의 과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 보다 '어떻게 하면 더 화난 척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였다는게 솔직한 평가이다. 내가 무슨 북한 노동당 대변인실 언론부장(내가 아는 한 지인을 언급하는 건 절대 아님..^^)이라도 되는 듯이 그들이 쓰는 표현을 일말의 고민없이 그대로 차용하거나 감정으로만 글을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글쓰기가 아니라 골방에 틀어박혀 허공을 대고 주먹을 휘두르는 짓과 같은 것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글 쓸 일이 많다. 이전까지는 맞춤법 측면으로 주로 이야기했는데 이 책을 보고 나서는 맞춤법은 기초 중의 기초일 뿐이고 편집, 기획과 글쓰기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말하고 글쓰기보다 기획하고 글쓰고 편집하는게 더 중요하다. 살아있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그냥 심심풀이로 읽어보면 좋다. 책의 저자 역시 그걸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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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이 2009/11/09 18:24

    선거때매 고민이 많이 들어서 읽어보고 있어요 틈틈히.
    재미있네요 저도 살아있는 글쓰기를 하고싶어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ㅠㅠㅠㅠ

    • Favicon of http://thebend.pe.kr BlogIcon 어처구니 2009/11/10 20:32

      오호...
      살아있는 글쓰기는 살아있어야 가능.
      머리가 살아있고 생각이 살아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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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먼저 드는 생각은 학습의 양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내 사고의 폭이 아직 매우 좁다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는 "그래도 나는 책을 좀 봤다!"하며 약간은 건방진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건 여전히 내가 내 비교대상을 여타의 다른 운동권들과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말로는 우리의 경쟁상대, 적수가 운동권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자신을 평가할 때는 좁고 폐쇄적인 운동권 집단과 비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권 집단과 비교를 해서는 결코 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세상의 대가(누굴 두고 대가라고 할지 추상적이지만 위대한 이론가, 실천가, 생활인 - 위대한 생활인에 대해서는 다음에 한 번 이야기하려고 한다.)들의 삶을 한편으로는 따라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나 자신의 내공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세상의 대가는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속된 말로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는 운동이론과 사상에 대한 책 보다는 다른 주제의 책이 더 눈에 끌린다. 글 쓰기, 디지털 세대, 지역 발전, 인간 행동, 심리, 고전 등의 책이 더 강한 인상에 남는다. 오늘 소개할 책 '넛지 (Nudge)'는 최근에 읽은 책으로 내 사고에 적지 않은 자극을 주었다. '넛지'라는 말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정도의 뜻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넛지 사례는,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남자 소변기 중앙에다가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서 소변기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80퍼센트나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라는 경고도, 심지어 파리를 겨냥하라는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즉, 어떠한 금지나 인센티브 없이도 인간 행동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바탕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힘. 바로 '넛지'이다.

더 많은 사례를 알고 싶다면 아래 블로그를 방문하시라.
<상식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라, 넛지> - http://blog.naver.com/creworld?Redirect=Log&logNo=70072172740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약간 옮긴다.

출처 http://unn.net/News/Print.asp?nsCode=53701

1. 우리는 냉정할 때보다 흥분했을 때 더 많이 소비하게 되는 무언가를 '유혹적'이라고 부른다.(72페이지)
-> 인민들에게, 우리는... 민주노동당은 유혹적인가?

2. 우리는 종종 사람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모종의 작은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보다 수월하게 바람직한 행동을 독려할 수 있다.(115페이지)
-> 이 책에서 가장 크게 공감했던 부분이다. 우리가 하는 많은 활동들은 밀어붙이기 방식이었다. 물론 이런 방식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역에서 활동하거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가면서 밀어붙이기 보다 모종의 작은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바람직한 행동(우리로 따지만 우리의 지지자로 만드는 일?)을 독려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문제는 그 모종의 작은 장애물은 무엇이고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책에서는 장애물을 찾는 건 치열한 탐구가 필요한 것이고 제거방식으로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를 말한다. 이것이 바로 슬쩍적 옆구리를 치는 '넛지(Nudge)'라는 개념이다.

3.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의 일종으로, 우리는 이를 RECAP이라고 칭한다. '기록하라(Record)', '평가하라(Evaluate)', '대체 가격과 비교하라(Compare Alternative Prices)'를 줄여 만든 두문자어다.(153페이지)
-> RECAP는 단순히 넛지를 가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우리의 활동을 혁신하는데도 많은 실마리를 준다. 혁신이라는 걸 평가와 총화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RECAP는 운동의 혁신 방식과 통하는 면이 있다.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기록) 이것을 가지고 평가(총화 및 평가)하고 다른 부분들과 비교하면서 운동의 혁신을 모색할 수 있다. 예전 학생운동에서 자주 했던 "뻥총화" 등의 이야기 역시 RECAP라는 틀로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사람들의 선택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좀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것. 이것이 '넛지'의 방식이다.

4. 복잡한 상황에서는 선택안을 최대한 늘리라는 주문만으로 적절한 정책을 창출할 수 없다. 선택안이 많을수록, 상황이 복잡할수록 사람들은 교화할 수 있는 선택 설계를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사용자 우호적인 설계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설계자가 인간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설계자들과 건축 설계자들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슬로건을 실천한다. 바로 "간단하게 유지하라"이다. 그리고 건물이 그 기능 때문에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사람들의 항해를 돕는 표지판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선택 설계자들은 이러한 교훈들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275페이지)
-> 간단하게 유지하라. 어쩔 수 없이 복잡해 진다면 이해를 돕는 표지판을 충분히 제공하라. 우리가 운영하는 사이트도 활동도 글도 이런 방식으로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바람직한 행동을 독려하고 싶은 대상은 바로 인민이 아닌가. 인민들에게 간단(명료)하게 전달하고 친절한 표지판을 제공하는 것. 이건 인민을 가르치려는 자세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당연한 자세이다.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본질은 자기 스스로도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것으로 일종의 멍청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4. 사람들은 어렵고 복잡하며 발생빈도가 낮은 결정에 대해, 그리고 적절한 피드백이 제공되지 않아서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을 때 넛지를 필요로 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363페이지)
-> 현재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넛지를 가해야 할 내용과 집단, 혹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여길 공략하자.

5. 우리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가 초당파주의(bipartisanship)의 믿음직한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환경보호나 가족법, 학교 선택권 등을 포함하는 많은 영역에서 보다 나은 거버넌스(governance)는 정부의 강제나 속박 측면에서 더 적은 것을 요구하고 선택의 자유 측면에서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인센트브와 넛지가 각종 요구사향과 금지사항을 대체한다면, 정부는 더 작아질 뿐 아니라 더 조심성 있는 조직이 될 것이다. 따라서 명확히 하자면, "우리는 더 큰 정부가 아니라 더 나은 거버넌스를 지향한다"는 얘기다.(372페이지)
-> 시장과 국가(정부)라는 오래된 논쟁에 중요한 해결 단서를 주는 부분이다. 우선은 좌파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연대전략이라는 것은 처지의 동일함 또는 현상에 대한 동일한 감수성을 가지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연대의 방향이 무엇인가라는 점이 중요하다. 더 큰 시장을 원하는 것인가(이명박 정부) 더 큰 국가(정부)를 원하는 것인가(대체로 맑스주의자들은 국가를 인민들에 대한 폭력 장치라고 하고 사회주의 역시 그런 방향이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사회주의 혹은 북한을 의미할 수도...). 난 여전히 사회주의를 지향하지만 시장과 국가(정부)를 대립의 관계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케인지언처럼 시장에 국가가 적절하게 개입해야 한다는 말과도 다르다. 말 그대로 '거버넌스(국가-정부와 시민사회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더 큰 '거버넌스'인가 더 나은 '거버넌스'인가는 미묘하게 들리겠지만 매우 중요한 차이이다. 더 나은 '거버넌스'는 어떤 것일까.

6. 이 책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주요한 주장을 펼쳤다. 첫 번째는 사소해 보이는 사회적 상황들이 사람들의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넛지는 보이지 않는 듯해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적절성의 여부를 떠나 선택 설계는 도처에 만연해 있으며 불가피하기 때문에 우리의 결정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두 번째 주장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가 결코 모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택 설계자들은 선택의 자유를 보호하는 동시에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방향으로 넛지를 가할 수 있다.(373페이지)
-> 이 책의 결론이다. 물론 오해하지 말 것은 이 책의 저자들의 기본 성향은 민주당(자유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시장의 기능을 매우 중요시한다. 따라서 우리가 책의 내용을 다 따라갈 필요는 없다. 우리가 세상과, 인민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알려주고 있는 듯 해서 적극적으로 소개한 것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읽어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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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2all.kr BlogIcon 어벙씨 2009/11/13 18:25

    트윗에서 서로를 팔로하면, 넛지라고 표기되는 거 아닌가? 그거랑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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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파괴 - 아멜리 노통브

책은 나의 힘 | 2009/06/22 15:00 | 어처구니
급작스럽게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에서 다녀왔다. 나는 물론 중앙당 대의원이 아니라서 대의원대회에 참가할 일은 없지만 몇몇 소개받고 인사할 분들이 있어서 겸사겸사 다녀왔다.

여 름이고 간만에 기차도 타고 그러니 좀 가벼운 책을 골라잡았다. 하지만 책이 그렇게 가볍지 만은 않았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이번이 3번째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었던 <살인자의 건강법> - 이건 정말 멋진 작품이다. - 과 매우 흥미롭게 읽은 <배고픔의 자서전>. 그리곤 가장 최근에 번역된 <사랑의 파괴>이다. 굳이 평가를 하라면 이번에 읽은 <사랑의 파괴>가 가장 느낌이 덜하지만 그래도 빛나는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열린책들


1.
전쟁은 1972년 시작되었다. 1972년은 내가 어마어마한 사실을 깨달은 해였다. 이 세상에서 없어서 안 될 것은 바로 적이라는 사실을.
적을 갖지 못한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존재다. 적이 없는 삶은 허무와 권태의 구렁텅이, 가혹한 시련이 아니겠는가?
적이야말로 구세주다.
적의 존재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역동적으로 살 수 있다.
적이 있음으로써 삶이라는 이 음울한 사건은 웅장한 서사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지당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거기에서 얼뚱한 결론을 끌어냈다. 적과 화해하고,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왼쪽 빰을 내밀라는 것이다.
그런 바보짓을 하다니! 적과 화해한다면, 더 이상 적이 될 수 없지 않는가?
더 이상 적이 없다면, 또 다른 적을 찾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는 발전이 없지 않은가?
따라서 적을 사랑하되 그 사실을 그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화해 같은 것을 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2.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이 말에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에는 여지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듣는 사람에게 자기 몫의 바람을 남겨 주어야 한다고나 할까.

3.
자유는 몇 제곱미터의 공간이 주어졌느냐로 계산될 순 없었다. 자유란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귀착되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선물은 그들의 존재를 잊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4.
다른 이들의 짐작과는 반대로 다른 사람에 대한 내 태도는 오만과 거리가 멀었다. 다만 논리적이었을 뿐이다. 세계는 나에게로 귀착되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렇게 결정한 것은 내가 아니니까. 그건 주어진 사실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 내가 무엇 때문에 친구들로 인한 번잡함을 감당한단 말인가? 그들은 내 삶에서 할 일이 없었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이미 중심에 있는 나를 더욱 중심에 있게 할 수는 없었다.

5.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나는 그 애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일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당시 나는 사랑이란 것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의 아름다움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애를 본 순간 너무나도 당연하게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 애는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고, 그래서 나는 그 애를 사랑했으며, 따라서 그 애가 세상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6.
제일 처음으로 해야 할 일 - 아니 할 일은 그것뿐이었다 - 은 새로운 적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아무나 적이 될 수는 없었다. 우리의 기준에 부합해야 했다.

7.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갈망하는 것이 전쟁인 줄 알지만, 실제로 그들이 꿈꾸는 것은 결투이다. '일리아드'를 읽다 보면 때때로 몇 가지 선택된 적대 관계가 병치되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영웅들은 상대 진영에서 자신에게 지정된 신화상의 적수를 찾아낸다. 그를 죽일 때가지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고 상대 역시 마찬가지인 그런 인물을. 하지만 그런 것을 전쟁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은 개인주의와 자존심을 전제로 하는 애정의 산물일 뿐이다. 영원한 적수, 자기만의 적수와 멋진 결투를 꿈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에게 걸맞은 상대와 한판 붙기 위해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8.
휴식 시간. 그 말은 분명 새로운 창조를 위해 쉬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시간의 실제 의미는 정반대였다. 내가 경험한 휴식 시간들은 대부분 파괴하는 데 - 반드시 남을 파괴하는 것에 국한도니 것은 아니었다 - 에 바쳐졌다.

9.
실수란 알코올과도 같다. 지나쳤다는 것을 이내 깨닫지만, 그쯤에서 절제의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신 근본적으로 취기와는 상관없는 일종의 분노 때문에 끝장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묘하기 짝이 없는 그 분노를 자존심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술 마시는 것이 옳고, 실수하는 것이 옳다고 어떻게 해서든지 주장하고 싶은 자존심. 그러므로 실수나 알코올 속에서 버티는 것은 논리를 무시하고 논쟁하는 것과 같다. 자신이 고집을 꺾지 않는 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자신이 옳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옳다고 인정해 줄 때까지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이다. 술에 만취하고, 실수를 정당화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온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지만 10년 후, 10세기 후에는 시간과 역사와 신화가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리라는 공격적이고 막연한 희망을 품은 채, 탁자 아래로 굴러 떨어지거나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간이란 모든 것을 승인해 주고, 아무리 지독한 실수나 악덕이라도 전성기를 갖게 마련이며, 옳고 그르고는 언제나 시대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던가?

10.
나는 뺨이라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두 뺨이 분노와 절망과 모욕감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자존심 때문에 품위를 잃을 때가 있는 법이다. 거기에 모욕당한 광란의 사랑이 합세하면 그 무너짐의 정도가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11.
프랑스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거짓말로는 상처를 입지 않는다>. 엘레나의 반응은 내가 아무것도 꾸며내지 않았음을 잘 증명해 준다. 그녀가 화가 났다면 그 이유는 이 이야기가 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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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지은이) | 창비(창작과비평사)

잠이 안 와서 그랬을까. 아니면 어제 하루 동안 지하철에서, 햇빛 내리쬐는 골목에서, 집 거실에서 혼자 눈물을 흘려서 였을까.

생 각해 보면 난 은희경의 소설은 그의 처녀작안 '새의 선물'부터 거의 대부분을 다 읽었고, 또 매우 잘 읽힌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경숙의 소설은 이상하게 몇십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고 재미도 없다고 느껴 왔었다. 물론 이 말은 내 취향이 은희경이었다는 거지 신경숙이 이상하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얼마 전, 생활도서관에서 경제 공부를 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데 후배 한 녀석이 책을 꺼내 놓았다. 그 책이 바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이다. 이 책은 이미 베스트셀러 작품으로 여러번 언론에서 소개되었기 때문에 작가가 신경숙이라는 것과 책 제목이 '엄마를 부탁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목이 '엄마를 부탁해'였기 때문에 혼자만의 상상으로는 아무래도 억척스러운 엄마와 딸 사이의 갈등과 화해에 대한 내용이겠거니 하며 큰 관심을 기울이기 않았다.

아마 올 해 어버이 날이 나한테는 좀 그랬던 날이었던 것 같다. 어버이 날이었던 5월 9일, 우리 엄마는 자궁근종으로 아주대학교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것도 여성한테는 매우 두려운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이었다. 엄마는 5월 8일 저녁에 입원을 했는데 그 때 병원에는 동생과 내가 함께 갔는데 동생이 담배를 피우러 간 사이에 한 젊은 초짜 여성 의사가 와서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폐경이신가요?"
".... 네... 그래요."
" 환자분은(난 이 표현이 좀 거슬렸다. 그냥 어머님은... 이렇게 불러주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하셔야 되는데 폐경기라면 난소가 필요없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난소도 같이 제거(제거라는 표현이 도대체 뭔가. 기분 나쁘게. 난 이 날 의사에 대해서 편견을 조금 가지게 되었다.)하는게 어떤가요?"
"..... (엄마는 당황이라기 보다는 두려움의 얼굴 빛이었다.) 그건 싫은데....."
"뭐 환자분이 선택하시는 문제지만 그냥 난소를 내버려두면 간혹 염증이 생겨서 재수술을 해야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 그래도 싫은데.... 무서워서..."

이 때 내가 한마디 했다.
"됐어요. 그냥 우리 엄마가 하라는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때 그 의사가 하는 말
"혹시 보호자세요?"
"...(난 이때도 좀 기분이 상했다. 당연히 보호자니까 옆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네... 아들이에요."

난 그날 엄마를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의 초경이 언제였는지, 엄마의 폐경은 언제 찾아왔는지, 엄마는 그동안 몸 상태가 어땠는지.(다행히 심각했던 건 아니었다.)
의사가 가고 나서 난 조금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동생이 병실로 들어오자 이번엔 내가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병원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아마 작은 결심을 했던 것 같다. 이번에 엄마가 수술 끝나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꼭 읽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 후배가 생활도서관에 그 책을 꺼내 놓았을 때 후배에게 물었다.
"어때? 재미있어?"
"음... 좀 슬퍼요. (이야기를 더 하려다가)... 형 읽을꺼면 형 다 읽은 다음에 더 이야기해요. 내가 이야기하면 스포일러 같을 수 있으니까."

난 그 날 책을 내 가방에 넣었다.

한 동안 책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아마 책 도입부분이 참 짠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앞으로 눈물을 와락 쏟을 준비를 하라는 듯이 책이 참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입부분에서 한동안 멈춰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도입부분이 지나자 책은 속도감있게 읽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면 결국 이 책은 이틀동안 다 읽었다고도 할 수 있다.

쑥스럽고 창피한 일이지만 도입부분을 지난 시점부터 난 많이 울었다. 책을 읽었던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방에서. 결국은 늦은 새벽까지 눈을 뜨고 마침내는 다 읽고 말았다. 읽는 내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물론 아주 펑펑 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눈물이 계속 흐르긴 했다.)

소설 속의 엄마는 자궁근종으로 수술을 받았다. 소설 속의 엄마는 5남매 중 첫째 아들을 끔찍히 챙겼다. 소설 속의 엄마도 그렇게 억척같았다.

그 리곤 엄마는 사라졌다. 아니 잃어버렸다. 그 뒤로 자식들이, 남편이, 또다른 누군가가 회상하는 엄마의 모습들이 책에 그려져 있다. 그 모습들에서 우리 엄마 모습을 발견해서 인지 난 참 슬펐다. 책을 읽는 내내 책을 다 읽고 나면 새 책 한권을 사서 엄마한테 보내줘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곤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이상의 이야기는 나 역시 스포일러라 판단되기 때문에 더 하지는 않겠다.

한동안 엄마를 보지 못했거나, 전화 통화를 못한 사람들은 엄마한테 전화를 바로 하면 좋을 것 같다. 혹여나 쑥스럽거나 전화기에 바로 손이 가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의 엄마를 부탁할 존재는 사실 없다. 자기 자신밖에. 자기 자신 이외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이승을 벗어난 저승의 누군가. 천국 혹은 지옥의 누군가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 바로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다시 한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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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명랑 2009/06/15 02:38

    동생이 사다놓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의 시작하는 몇페이지를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회사를 그만두신건지, 요새는 뭘하고 계시는지, 연애라는 건 잘 하고 계신지 등 별것이 다 궁금하네요. 오빠 얼굴 본지, 오빠와 함께 술마신지 정말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뭐하고 살고 계세요? ^^ 저는 늘 그렇듯 늘 그러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야 별 것 없고, 별 것 있다 하더라도 소리 내어 말하면 결국 의미 없어지잖아요, 아멜리 노통과 김훈과 신경숙으로 이어지는 오빠의 포스팅에 감사하는 요즘이네요~

    • 그대 2009/06/22 17:34

      와... 나 역시 회사(?)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요새는 어떤 영화를 보고 있는지. 혹시 연애라는 건 하는지. 궁금하다네.

      난 늘 그렇듯 사는 건 아니야. 왜냐하면 지난 4월 14일 이후로 내 삶이 점차 달라지고 있으니까.

      병특 끝나면서 만나서 반가운 사람들을 한번씩 찾아가서 밀린 수다도 좀 하고 영화도 보고... 간단히 술도 한잔 해야지... 했는데 그게 참...

      흔한 말이지만... 인연이 있다면... 술 한잔이야 곧 먹게 되겠지....^^
      건강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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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제목을 누르면 알라딘으로 갑니다.)
김훈, 푸른숲(2005년)


소설가 김훈이 2005년에 쓴 소설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김훈의 소설을 읽어보라고 여러 번 권했지만 사실 단 한번도 김훈의 소설을 제대로(이 말은 책을 대부분 읽다 말았다는 말이지요)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요즘. 정말 요즘 글이 잘 읽히는(요즘 같은 느낌이면 하루에 한권씩 볼 수 있을 것 같긴한데. 아마 이것도 순간이겠지요.) 시절에 그냥 단숨에 읽었습니다.

제목이 좀 끌려서 읽었다고 하는 편이 솔직히 감정인데 읽고 나서는 마음이 찡해져서 좀 그랬습니다. 아래는 읽으면서 몇몇 선정한 부분들입니다.


1.
봄에, 앞섬의 무덤들은 햇빛을 받아 포근했다. 선착장에서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있으면 앞섬 무덤에서는 오래된 흙과 햇볕의 향기가 풍겨왔다. 겨울에 무덤들은 흰눈에 덮여 따스해 보였고 그 눈 위에 달빛이 비치는 밤에 무덤들은 별처럼 반짝거렸다. 나는 선착장에 나와서 해풍에 실려오는 앞섬 무덤들의 냄새를 맡거나 겨울 달밤에 눈 덮인 무덤을 바라보기를 좋아했다.

2.
봄에 숲 속으로 들어가서 이리저리 빈둥거리고 있으면 나무들이 물을 빨아올리느라고 윙윙윙, 쉭쉭쉭, 쿨렁쿨렁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이들의 몸 속도 그와 같은 모양이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몸 속에서는 소리가 난다. 나무도 풀도 아이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3.
사람들은 구두가 낡으면 헌 구두를 내버리고 새 구두를 사 신지만 개들은 발바닥 굳은살을 도려내고 새 살을 붙일 수가 없다. 굳은살은 한 벌뿐이다. 등산화도 축구화도 조깅화도 장화도 군화도 없다. 그래서 내 발바닥 굳은살은 이 세상 전체와 맞먹는 것이고 내 몸의 모든 무게와 느낌을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의 저 가볍고 미끄러운 몸놀림은 얼마나 부러운 것인가. 나는 내발바닥 굳은살로는 건너갈 수 없는 사람들의 세상에 가슴이 저렸다. 나는 혀를 빼서 발바닥 굳은살을 핥았다.

4.
낯설다고 해서 짖지는 않는다. 낯선 사람이 오히려 반가울 때도 있다. 그 낯설음 속에 내가 봐줄 수 없는 무례함이나 건방짐, 사나움 같은 것이 느껴질 때 나는 짖어댄다. 나는 나의 판단이 늘 옳다고 믿는다. 믿음은 확실해야 하고 판단은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다급히 짖은 때나 싸울 때 나는 짖지 마, 이리 와, 라고 외치는 주인님 말을 듣지 않는다. 들리지가 않는다. 주인님은 사람이라서,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싸워야 한다는 믿음이 흔들리는 개는 개 축에 들지 뭇하고 판단이 정확치 못한 개는 똥개다.

5.
싸울 때는 입을 벌려서 짖지 않아도 몸 속에서 으렁 으렁 으렁, 와릉 와릉 와릉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싸울 때 내 마음은 미움으로 가득 차서 슬프고 괴롭고 다급하다. 싸움은 혼자서 싸우는 것이다. 아무도 개의 편이 아니다. 싸우는 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롭다. 싸울 때, 미움과 외로움은 내 이빨과 뒷다리와 수염으로, 내 온몸으로 뻗쳐나온다. 으렁 으렁 으렁 소리는 그 외로움과 슬픔이 터져 나오는 소리다. 화산이 터지기 전에 땅 밑에서 용암이 끓는 소리와도 같다. 싸움은 슬프고 외롭지만, 이 세상에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있다. 다라서 다 큰 개가 되면 그걸 알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은 끝내 피할 수 없다.

6.
앞발을 창문틀에 올리고 사람처럼 뒷다리로 서서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정말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은 내가 달을 밟을 수 없는 것과 같았다. 내가 사람의 아름다움에 흘려 있을 때도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고 있었다.

7.
나무의 흰 속살에 나이테가 드러났다. 어떤 나무는 속살이 분홍색이었다. 가을 햇볕에 나무가 말라가면서 풍기는 향기를 나는 나 혼자서 사랑했다. 깊은 땅 밑을 흐르는 맑은 물의 향기와 산 속에서 부는 바람의 향기와 가을 햇빛의 향기를 나무가 모두 빨아들여서 다시 토해내는 향기였다.

8.
할머니가 밭일을 시작할 때 주인님은
- 어머니, 이제 그만 좀 부지런 떠시고 쉬세요. 아이들이나 챙겨주세요.
라며 말렸지만 할머니는 듣지 않았다.
- 땅을 놀리면 벌 받는다. 노는 땅에 쪼이는 햇볕이 아깝지도 않냐?
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9.
나는 비를 맞으며 흐느적흐느적 걸었다. 다 젖어서 더 젖을 것도 없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앞다리 겨드랑 밑과 턱 밑에서 수컷의 비린내가 물씬 풍겨나왔다. 힘 좋고 가득 찬 자의 냄새가 아니라 가난하고 모자라는 자의 냄새였다. 흰순이를 찾아가는 길은 그 가난하고 모자라는 자의 길이었다.

10.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는 날, 나는 내 목줄을 잡은 영희를 따라서 보건지소에 갔다. 나는 두 살이지만 다 큰수놈이고 영희는 초등학교 육학년이지만 아직도 어린 여자아이다. 영희가 잡은 목줄에 어끌려 예방주사를 맞으러 가는 일은 지나친 호사 같아서 창피스러웠지만, 개가 저 혼자서 예장주사를 맞으러 갈 수는 없었다. 개 혼자 가면 사람들은 예방주사를 놓아주지도 않는다.

11.
그렇고 못되고 경우 없는 놈이 그토록 강하다는 것은 알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었지만, 그놈은 어쨌든 강한 놈이었다. 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물린 다리는 땅을 디딜 수 없이 힘이 빠졌고 내 몸이 아닌 것처럼 허청거렸으나, 그 욱신욱신 쑤셔대는 고통은 모조리 나의 것이었다.

12.
큰길 가로수 밑둥까지 악돌이의 오줌 냄새는 진동했다. 악돌이가 차지한 구역 안에도 개들은 많았지만, 개다운 개가 없었다. 사람 옆에서 편히 얻어먹고 살아서 아랫배가 늘어진 놈들이거나 자신이 개인지 닭인지조차 모르고 하루 종일 먹이를 찾아 쓰레기통을 헤집는 놈들뿐이었다. 다 컸다는 놈들의 덩치가 꼭 쥐새끼만한 것들도 있었다.
이런 놈들은 짖은 때는 양철통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다리는 대개가 안짱다리였고 걸을 때는 종종걸음이었다. 살찐 집토끼 같은 것들이 파마를 한 머리에 리본을 달고 다니는 꼴과 마주칠 때 나는 역겨워서 피했다. 악돌이가 동네에 나와 돌아다니며 이런 놈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집 안에서 밖을 향해 짖지도 못했다.

13.
떠나기 며칠 전날, 영희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 엄마, 보리는 데리고 갈 거야?
- 글세다. 저렇게 싸질러 다니는 놈을 어떻게 아파트에서 기를 수 있겟니?
- 그런 어떻게?
- 개들은 개 갈 길이 있는거야.

14.
악돌이가 떠나고 흰순이가 죽고 없는 마을은 견딜 수 없이 허허로웠다. 할머니는 남은 짐을 정리하느라고 집 안에서 나오지 않았고 나는 추수가 끝난 빈 들판을 할 일 없이 쏘다녔다. 주인님의 무덤 아래쪽으로 바다는 언제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철석거리며 밀려나가고 밀려들어왔다.
할머니가 떠나면 나는 또 어디론가 팔려가야 할 것이다.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마을에 악돌이가 여전히 힘세고 사납게 살아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흰순이 같은 개들이 풀이 돋아나고 바람이 불어오듯이 저절로 태어나주기를 바랐다. 저절로 되는 것들은 다들 저절로 돌아올 것이다.

15.
내 마지막 며칠은, 가을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습기 빠진 바람 속에서 가벼웠다.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고 세상의 온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거릴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전히 흰순이와 악돌이 들이 살아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여전히 냄새 맡고 핥아먹고 싸워야 할 것이다. 어디로 가든, 내 발바닥의 굳은살이 그 땅을 밟을 것이고 나는 굳은살의 탄력으로 땅 위를 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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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약간의 과음을 한 탓인지 하루 종일 몸 상태가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공부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책 한 권을 보자는 마음으로 한 권 잡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도서관 후배들이 재미나게 하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한번 읽어봐야지 했는데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소파에 누워 그냥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 책은 처음인데 첫 소설을 발간했을 때 천재라고 했다고 하는군요.
 
앞으로 책을 보고 나면 그 책에 대해서 올릴건데 그건 책 감상문이 아닙니다.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문학작품을 읽고 감상문을 쓴다는 게 참으로 별로더군요. 그래서 제가 찾아낸 부분을 옮기는 것을 대신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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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의 자서전 (누르면 알라딘으로 갑니다.)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1.
 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우리 집에서는 뭐 하나 부족한 적이 없었다. 바로 이 때문에 내가 나의 배고픔에서 남과는 다른 점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내 배고픔은 사회적으로 설명 불가능하다.
 여하튼간에 내 배고픔을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해두자. 음식에 대한 배고픔일 뿐이었다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게 있을까? 음식에만 배고픈 게? 보다 광범위한 배고픔의 징표가 아닌, 단순한 밥통의 배고픔이라는 게 있을까? 배고픔, 나는 이것을 존재 전체의 끔찍한 결핍, 옥죄는 공허함이라 생각한다. 유토피아적 충만함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는 그저 단순한 현실, 아무 것도 없는데 뭔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그런 현실에 대한 갈망이라고 말이다.


2.
 내가 니쇼상에게 애원도 하고 아양도 떨면 사탕이나 조그만 우산 모양 초콜릿이 나왔고, 가끔씩은 심지어, 오! 기적이여, 우메수도 나왔다. 일코올은 설탕의 절정이요, 설탕이 지닌 신성(神性)의 증거이자, 그 삶의 최절정이 아니던가.
 매실주, 그것은 몸에 얼큰히 퍼지는 시럽이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
 유아 알코올 중독을 미화시킬 생각은 없지만 나한테 그게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만은 지적하고 싶다. 내 유년기는 내 열정들을 아주 잘 받아들였다. 나는 유약한 애가 아니었다. 약골인 내 몸이 초월적 배고픔에 점점 단련되어 갔다.


3.
 나는, 삶이란 알코올이 첨가된 긴 희열의 시간이라는, 무용수들이 가득하고 뮤지컬들이 생기를 불어넣는 시간이라는, 맨해튼의 고층 빌딩들이 시야를 장식하는 희락의 시간이라는 생각에 그동안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4.
 나는 결국 찾아냈다. 그 문장이 너무 아름다웠던 것이다. 내게 벌어진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교수들이 입에 달고 다니던 <이 작가의 문체를 분석하시오>라는 식의 이야기를, 나는 물론 기억하고 잇다. <이 시는 아주 잘 쓴 시다, 이 모음의 경우 시 전체에서 네 번 나오거든> 등등의 이야기들 말이다. 이런 식의 해부는 마치 사랑에 빠진 남자가 제3자에게 애인의 매력을 조목조목 따져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지겨운 일이다. 문학적 아름다움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문학적 아름다움을 경험한 일을 남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마치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자기 애인의 매력을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혼자 저절로 그 아름다움에 도취하지 않고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경험이다.
 이 발견은 내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나 다름없었다. 독서는 알코올과 함께 내 삶의 본질적인 부분이 되었다. 이제 나의 독서는 이 수수께끼 같은 아름다움을 찾는 행위였다.


5.
 아무러면 어때? 아직은 이렇게 목숨이 붙어 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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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 2009/05/22 15:49

    5번째 깔끔하고 간결하게 맘에 드네요!

    아무렴 어때! 으흐흣

  2. 그대 2009/05/22 22:56

    와... 정말 오랜만이에요... R님...
    오늘은 낮에 보셨군요...

    한번 읽어봐요. 볼만한 책이에요.

    나중에 좋은 세상이 되면... 술이나... 차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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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 리오 휴버먼( Huberman, Leo )
옮    김 : 장상환
출    간 : 2000년 4월 15일
페이지 : 398페이지
가   격 : 13,000원(인터넷 구입하면 10,400원)


작년부터 경제공부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실물경제를 중심으로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보고서나 경제관련 포스팅을 하는 블로거들의 글들에서 배웠다. 하지만 체계가 없었고 소위 말하는 기본기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공부를 해도 경제에 대한 감은 전혀 늘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 정도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듯이 경제공부를 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은 경제공부의 기초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만난 키워드가 바로

환율, 금리, 채권

3개월동안 환율, 금리, 채권을 집중적으로 학습했다. 각 키워드에 대해 서적 2권과 구글에서 닥치는대로 검색을 했다. 평일에는 회사에 가야했기 때문에 주로 주말에 몰아서 책을 읽고 자료를 검토하고 외우고 정리하곤 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더니 환율, 금리, 채권에 대해 아주 기초적인 부분들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키워드가 제대로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했다고 과거형을 쓰는 것은 환율, 금리, 채권에 대한 학습은 경제공부 초기에 반드시 거쳐야할 단계지만 그것이 경제공부의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에 발간된 "똑똑한 돈"을 읽고 더이상 환율, 금리, 채권에 대한 책은 읽지 않을 생각이다. 이것은 내가 환울, 금리, 채권에 대해서 전문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젠 경제공부에 있어서 인식을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건 결국 철학과 역사.

실물경제에 대한 공부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나오는 각종보고서와 책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일주일에 2-3개의 보고서가 나오기 때문에 밀리면 안된다. 이 보고서들을 매우 꼼꼼히 보는 것은 사실 기본이 있어야 가능하다. 환율, 금리 채권을 공부했던 과정이 그동안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인내심이 요구되겠지만 경제사와 경제철학을 지속적으로 공부할 생각이다. 그렇게 방향을 잡은 뒤 처음 본 책이 바로 리오 휴버먼이 1936년 쓴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감상은 이 책은 정말 1936년에 쓰여진 책인지 믿을 수 없다는 것. 작년에 쓰여졌다고 말해도 충분히 지금을 설명할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본가(자본주의)는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것에 상당히 공감했다. 이 책은 지금의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제도화되는 과정을 저 먼 중세시대부터 천천히 하지만 상당히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 정리할 수 없지만 경제공부를 하고 있거나 막 기초공부에서 넘어온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구글로 부터 배운 건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하고 나머지는 모두 링크를 걸라고 한 점인데 책 내용은 여기서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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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다 - 지셴린

책은 나의 힘 | 2009/03/06 17:51 | 어처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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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지셴린  
  옮긴이 : 허유영
  분   류 : 비소설
  형   태 : 국판 / 276쪽
  가   격 : 12,000원
  출간일 : 2009년 1월 5일
  발   행 : 추수밭


잠시 시간이 나서 네이트에 들어갔더니 아는 후배의 닉네임이 "다 지나간다".
그래서 뭐가 지나가나? 하고 물었더니 책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검색해 보니 위에서 보이는 책이 나왔다.

나는 일주일 1-2권 정도의 책을 읽는데. 얼마 전까지는 김연수의 책을 보다가 다시 경제서적으로 옮겨왔다. 그래서 그런 조금은 건조해진 듯한 느낌도 있었다.

책 리뷰한 페이지들을 따라가다보니 쿡쿡 찌르는 부분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이 책.. 사기로 했다.


신석(神釋) / (도연명)

늙으나 젊으나 죽기는 매한가지
어짊과 어리석음을 가늠할 수 없네
취하면 잊을 수 있다 하나
오히려 늙음을 재촉하는 것
선한 일을 이루면 기쁘다 하나
누가 있어 그대를 알 것인가.
너무 깊게 생각하면 도리어 삶이 다치게 되니
마땅히 대자연의 운에 맡겨두어야지.
커다란 조화의 물결 속에서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게나
끝내야 할 곳에서 끝내버리고
다시는 혼자 깊이 생각 마시게.

-> 내가 빨간색으로 강조한 부분에서 한방 먹었다. 난 취한다고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취함은 그냥 취함일뿐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근데 "오히려 늙음을 재촉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고집이 세지나. 나이 먹은 사람들의 그 황소고집처럼.

-> 마땅히 대자연의 운에 맡겨두자고. 그래 난 운이 좋은 편이니까.

“인생 백 년 사는 동안
하루하루가 작은 문제들의 연속이었네.
제일 좋은 방법은 내버려두는 것.
그저 가을바람 불어 귓가를 스칠 때까지 기다리세.”

-> 하루하루가 작은 문제들의 연속. 그래 맞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게 작은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어느 정도 술을 먹고 늙음을 재촉해야 내버려두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내버려두는 게 방치나 체념이 아니라 '가만히 쳐다 봄'이라면 나는 이 세상을 또 사람들을 얼마나 가만히 쳐다볼 수 있을까. 힘든 일이다. 하지만 가만히 쳐다보기. 는 꽤나 매력적인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곧 봄바람이 불어올테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가을바람도 찾아오니까.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는 것. 그것도 나쁘지 않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버지에게 한 권 보내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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