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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옹졸했다. 누군가의 실패 혹은 패배를 그토록 강렬하게 바랐던 적도 별로 없었다. 나는 두 개의 길 앞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욕심이 과했는지 아니면 정말 할 수 있다고 믿었는지 가랑이가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희희덕거리다가 결국은 길에서 벗어났다. 차라리 욕심이었다면 반성하면 될 일이다. 욕심이 아니라 편협하고 옹졸한 내 자신이 실패했다.
2. 하루 하루 감정의 파도를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윽박지르고 협박하고, 때론 응원하고 그렇게 그 시간을 건너왔다. 절박함이 즐거움을 이기지 못한다는 출처도 불분명한 말이 생각나더라. 난 절박했을까. 어찌보면 도착하지 않는 편지가 아니라 아예 쓰여지지도 않은 편지를 상상한 것은 아닌가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3. 날씨는 점차 봄날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봄날에 참 민감하다고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매년, 봄은 나에게 선택을 요구했다. 대부분은 이별을 요구했다. 그 장소, 그 시각, 그 분위기, 그 사람들과의 이별을 요구했다. 그러다보니 여름은 그 이별의 상처를 땡볕 속에서도 덧나게 하는 시간이었고 가을은 잠시 망각하고 겨울이 되면 그 상처가 시리도록 아팠다.
4. 좀 더 커질 수는 없을까. 좀 더 대범해 질 수는 없을까. 누군가를 참 싫어했지만, 그 사람이 된 것 빼고는 달라진 것은 없다.
5. 올 해는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걷고 싶었다. 근데 아무래도 올 해는 또다시 반성하는 마음으로 만나야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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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 의원실 사람들은 이 황량한 공간을 선본 사무실로 만들기 위해 공사작업을 시작했다. 10일 이상 나무를 자르고 못을 박고 전기를 연결하고 형광등을 달고, 대형난로를 설치하고 입주했다. 전화선과 인터넷 사용을 위해 KT에서 별도의 공사를 해야했다. 물론 돈도 좀 들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머리에 어떤 하우스나 임시 가건물이 떠오른다면 바로 정답이다. 우리 선본은 바로 그런 느낌의 공간이다. 그래서 말그대로 선거 캠프다.
3. 우리는 이곳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의정부의 새로운 진보정치'라는 다소 촌스러운 모토를 사용했다. 그리고 '청소부 국회의원 홍희덕'이라는 인사말을 건냈다. 몇 날을 고심하다가 우리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진보정치가 아니라 청소부가 만드는 진보정치는 뭘까. 우리 의원님의 가장 큰 장점은 공감 능력이다. 없이 산 사람들 특유의 그 정서에 대한 공감이다. 홍희덕 의원은 그리 화려한 의원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의원이다. 홍희덕 의원의 4년 간 의정활동은 어찌보면 매순간이 싸움의 연속이었고 험한 길이었다. 이는 진보정당 의원으로서 숙명적인 어려움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청소부 국회의원이라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는 의원이라는 당내, 혹은 세상의 편견과의 싸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뭘까 하고 정말 고민했다.
4. 우리가 찾은 답(이라고 쓰지만 사실은 우리의 바람이기도 하다)은 '기적'이다. 청소부가 만든 첫번째 기적이 '홍희덕 의원'이다. 이제 우리는 청소부가 만드는 두번째 기적을 준비하고 있다. 진보정당이 생각하는 노동의 가치, 청소부가 생각하는 삶의 이야기. 홍희덕 의원은 17년간 의정부 구석구석을 청소했던 사람이다. 지역 주민보다 지역을 더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기적을 꿈꾸며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뛰고 있다. 매일 벌어지는 사소한 문제와 의견충돌이야 어느 선본에나 있겠지만 홍희덕 의원의 움직임은 하나하나가 바로 감동이고 기적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5. 의정부에서 '청소부가 만드는 두번째 기적'을 나는 보고 싶다. 지금은 그 기적을 함께 만들고 있다는 것이 좋을 뿐이다. 기적의 가능성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크게 보면 전국에 있는 모든 우리 당 후보님들이 바로 그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 추운 바람을 사랑하며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홍희덕 의원이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공감능력으로 앞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6. 홍희덕 의원의 선거만큼이나 감동으로 다가오는 게 바로 조성주의 국회의원 도전이다. 지금은 유명한 청년 활동가, 정치적 발언자로 인식되지만, 나에게 그는 늘 나와 함께 사업을 토론하던 친구다.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학생운동의 혁신을 위해 전국을 함께 누비던 그 때를, 그 누구도 나서지 않을 때 패배를 예감하면서도 선거에 출마했던 20대 후반의 일들도 여전히 선하다. 어느 날, 흥분된 얼굴로 집에 들어와 일본 사이트를 보여주며 이게 청년운동의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했던 그 날도 말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인터넷 사이트는 일본의 수도권 청년유니온 홈페이지였다.
7. 사람들아. 아시는가. 얼마나 절박했는지. 얼마나 승리에 굶주렸는지. 얼마나 이 견고하고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벽에 작은 구멍이라도 내고 싶었는지 말이다. 청년유니온의 초기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슬며시 눈물이 나오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김영경, 조금득, 조성주 등등의 초기 멤버들의 인내와 끈질김이 없었다면 지금의 청년유니온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를 비웃거나 실패할 거라고 냉소의 눈빛을 보낸 이들도 많았다. 언론은 피자배달 30분제 폐지와 커피전문점 주휴수당 지급 성과를 두고 청년유니온의 기획력과 추진력이라고 평가하지만 그건 절박함, 승리에 대한 그야말로 절실함의 결과였다.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흔하게 하는 말 중에 "나는 내가 루저인 줄 알았어요. 근데 청년유니온에 와서 내 삶에 자긍심을 얻었어요. 고마워요. 정말". 조합원들이 삶에서 느낀 절망감이 절박한 승부에 대한 의지로 바뀔 때 우리는 승리하곤 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룬 승리의 다른 이름은 청년들의 절박함이었고 자존감에 대한 갈구였다.
8. 한편으로는 미안한 맘도 적지 않다. 누구나 화려한 길을 꿈꿀 때 그는 늘 두번째였다. 우리가 누군가의 미래를 꿈꿀 때 거기에 그의 꿈은 늘 두번째였다. 꿈은 스스로 만드는 거지만 누군가가 함께 만들 때 강해지는 법이다. 청소부 홍희덕의 기적을 위해 우리가 움직이듯이 조성주의 꿈을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누구는 돈을 내고 또 누구는 정책을 만들고 또 누구는 사람들을 미친 듯이 만나고, 이 모든 것이 그 무슨 조직으로 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자존감을 찾고 진보정당에 대한 자긍심을 찾기 위한 절박한 외침이다. 나부터가 그렇다. 그렇기에 그의 꿈은 단순히 꿈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존감이 걸려 있는 싸움이다. 조성주에 대해서 애써 외면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은 늘 그럭저럭 승리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당신들은 결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9. 나는 그래서 조성주와 홍희덕 의원이 겹쳐 보이곤 한다. 늘 비주류였고 배제받던 사람들 속에서 자존감을 키워 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2012년 내가 마주한 이 두개의 선거는 내 30대 남은 삶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35살인 지금, 나는 그동안 확신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사람들아, 우리를 지켜봐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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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살 이후로 14년 동안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왔다. 만난 사람 수만큼이나 이야기도 참 많이 했다.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나더라 수다쟁이라고도 한다. 어쩜 그렇게 이야기를 끊기지 않고 할 수 있냐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했던 말, 비슷한 말도 많이 하게 된다. 우선은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반응해 줬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조용히 보낸다. 그런데 말이다.
3. '둥지'에서 했던 말들은 조금 다르다. 각자가 생각하는 '강점'과 '약점'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강점'이 생각했던 '강점' 중에 있냐고도 물어봤다.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했던 사람인데,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거는 자신있다고 생각했던 나인데, 참 어려웠다. 결국 적기도 하고 발표도 했지만, 그게 정말 내 강점인지 약점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4.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제대로 이야기해 보지 못했던 것. 그건 바로 나였다. 나는 나에 대해서 표현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했다. 심지어 직업선호도심리프로그램에서는 많은 분야에 흥미 자체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내가 다른 구직자들보다 절박함이 적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건 절박함 보다는 애정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근데 그 자기애가 관계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5. 이런 이야기를 주변 지인들에게 했더니. 반응은 한결같이 "에이, 말도 안되요. 형처럼 명확한 목표가 있는 사람이 어디있어요."라고 한다. 지난 10년 이상 나는 그렇게 확신차게 이야기하고 행동했던 모양이다. 근데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다. 이건 걱정, 절망 같은 게 결코 아니다. 정말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서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6. 누구는 이런 나를 보고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29살 12월까지는 건조한 바람처럼 살았다. 그 후 2년 동안은 방향이 정해져 있는 바람처럼 살았다. 32살 4월부터는 정처없는, 목적지가 없는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살다보면 또 무슨 일을 하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걱정하고, 또 조금은 설레이고. 하다보면 가끔씩 즐거워하고 눈물도 나고. 그러다가 그게 오래할 일은 아닌 것 같은 느낌. 그런 것의 반복.
7.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10년 이상 동안 즐거워했던 일. 힘들 때 힘을 주던 일. 아무리 바쁘고 정신이 없어도 기꺼이 했던 일. 그런 것들이 재미가 없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8. 난 앞으로도 큰 변함없이 또 일을 할 거고, 술을 마실거고, 사람들도 수다도 떨고 저 멀리 바람처럼 움직이기도 할 거다. 근데. 조금은 생각이 필요한 시점에 도착한 것 같다.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질문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뭘까." 이 질문을 한참 처다봐도 참 묘한 물음이다. 분명 어딘가에 도착한 것 같은데, 그게 어딘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질문 자체에 의미가 있는 시기다. 그것을 '질풍노도'라고 부르던 '나이 먹음'이라고 부르던. 여하튼 나는 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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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상상 2011/07/25 14:39
와...우
'그대'
자신을 만나러 가시는군요! 걸으면서!!!
저도 휴가계획을 세웠는데~
글을 보니 뭔가 추가해야 될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웃고즐기다가 서울로 무사히 귀환하시길 바래요!
2. 우리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렸을 때 이사를 많이 다녔다는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지만, 지난 10년 동안 이리저리 역마살이 낀 것처럼 다닌 것에 조금이라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는 가끔 생각한다. 아버지가 군인이어서 집안 분위기가 엄하거나 그런 건 정말 단 1퍼센트도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군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었고 한 인간으로서 삶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레 가장이면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자신의 꿈이나 욕망보다 앞선다고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난 그런 아버지를 싫어한 적은 없다. 어찌보면 현재의 내가 결혼이나 가정같은 것에 내 또래의 친구들과 다르게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그런 아버지의 영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으나까 말이다. 여하튼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는 자기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군인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
3. 문제는 그런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삐긋하면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가족 전체에게 전이되고 결국은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그게 우리 엄마다. 아마 그래서 나는 앞뒤 다 빼고 엄마를 주로 이야기했고 엄마에 대해서 감정이 움직였던 것이다. 큰 근심이나 어려움이 없었던 우리 집에, 이건 내 나이 24살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근데 그 때 아버지는 좀 멀리 나갔다. 도박으로 2억 가까운 돈을 날리고 어느 날부터 표정도 달라졌다. 그리곤 얼마 안되어서 퇴직했다. 그 때 아버지 나이는 내 주변 친구들의 경우로 보면 한창 때였다. 즉, 가족을 위해 한창 돈을 벌어오는 때라는 뜻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때부터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4. 담배는 원래 태우지 않았지만, 술을 그렇게도 좋아했던 아버지였다. 그런 사람이 술을 끊었다. 아들들에게 가끔씩 공부이야기도 하고 싱거운 이야기도 하던 사람이 말수도 적어졌다. 말 자체를 끊은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깊게 들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찾은 출구는 불교 경전이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그 이후로 금강경을 아마 수십번 혹은 수백번 읽고 썼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족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보다는 내면을 다스리는 방법을 택했다. 이 방법은 나머지 가족들을 분노하게 했지만 어쩔 도리는 없었다. 나는 엄마한테 이혼하라는 말까지 했지만 엄마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그 때 결혼과 가족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주 어렴풋이 알아버렸다. 가족은 참으로 무서운 거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5. 그로부터 10년 정도 지난 셈이다. 여전히 빚이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겪었던 일들을 생각한다면(물론 나는 지난 10년의 과정 속에서 철저하게 밖에 있었다. 나는 가족 중에서도 외부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우리 집에 또다른 아버지였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상당히 호전되었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산재를 한 번 당했고, 엄마는 자궁에 물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한 번 했고, 동생은 이 모든 과정을 때론 묵묵하게 때론 격하게 견뎌왔다. 나는, 그 10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여행하듯이 살았다.
6. 오늘 엄마집에 다녀왔다. 나는 2-3개월에 한 번씩 엄마집에 간다. 내가 굳이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엄마집이라고 칭하는 것은 나는 그 집에 가서 정말 엄마집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 집은 정말 엄마집이다. 물론 엄마 소유는 아니고 임대주택이지만 그 신청자는 엄마 이름으로 되어있다. 엄마집에 갈 때마다 나는 이동하는 것을 좋아함에도 늘 무거움 마음으로 지하철을 탄다. 엄마는 큰 아들이 온다고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한다. 나는 그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좀 자다가 빈둥거리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그게 엄마집에 다녀오는 내 패턴이다.
7. 오늘은 조금 달랐다. 엄마집에는 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그 집에 항상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버지의 존재를 새삼 느꼈다. 아버지가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 병을 꺼내더니 마른 멸치, 양파 썰은 것을 놓았다. 처음에는 잔을 하나 놓더니 이내 잔을 하나 더 꺼냈다. 그리곤 나에게. "한 잔 할래?"
8. 정확히 두 잔 먹었다. 3주 동안 비가 계속 내렸다가 비가 와서 그런지 오후 3시였지만 땀이 비오듯 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막걸리를 마셨다. 정치 이야기도 좀 하고, 지역감정에 대해서 좀 이야기하고, 남북문제에 대해서 조금 했다. 10년 만에 아버지에 한 잔 하는 이야기 안주는 그런 것이었다. 아버지는 조금 만족스러웠을까. 10년 만에 아들과 막걸리 한 잔 해서? 물론 나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무언가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9. 물론 막걸리 한 잔으로 지난 10년이 메워지지는 않는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는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는 또다른 아버지였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할 처지가 아닌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금강경을 보고 그 내면을 다스렸다면, 나는 시덥잖은 운동 이론서와 아스팔트 위에서 그 시간을 건너왔을 뿐이다. 내가 우리 아버지에게 배우는 점 하나는, 아버지는 항상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학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그것에 있다고 믿고 싶을 뿐이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그런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그 메일은 아버지가 나에게 금강경 몇 구절을 보내며 그걸 읽고 마음을 다스리라고 한 메일에 대한 답장이었다. 나는 부자 관계 중에 가장 좋은 건 함께 공부하는 관계가 아닐까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나와 아버지는 이 순간을 지내고 있다.
10.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건강하길 기원한다. 내가 아끼는 후배의 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병원에 계셨기 때문에 그 친구도 담담하게 준비했지만, 시간이 흐를스록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10년은 2억이라는 돈을 갚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골목길로 들어가 헤매다가 지금 막, 딱하고 마주치기 위한 시간이었다. 나는 꼬인 골목에서 지금 나왔다. 아버지도 그 골목에서 나왔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가 있는 그 골목으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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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 2011/10/04 00:17
글 참 좋네요. 농담반 진담반 유쾌하게 나누는 말도 좋던데, 이런 글은 진심을 담은 글만이 주는 울림이 있어 좋은듯. 내가 아버지가 있는 그 골목으로 가면 되니까...참 성숙한 사람이군요.
지난 3주 동안은 소주 2병 먹고 초보운전하는 삶을 살았다. 불현듯이 어디가 가고 싶어서 그냥 갔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이야기가 갑자기 화를 불러오더니 끝내는 눈물까지 데리고 왔다.
내 지인들은 나한테 "술 좀 작작 먹어라"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근데 술은 다 마신 후에 내가 술을 마셨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마시기 시작한 순간부터 취하는 전 과정에서 희희덕거리거나, 흐린 눈으로 상대방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하다가, 그냥 걷기도 하다가. 옛날 일이 생각나서 자조도 아닌 그렇게 기쁨도 아닌 그저그런 이야기들을 한다.
"그 때가 아마 27살, 아닌가 28살이었나..."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말은 에너지 소비가 크다. 단순히 기억을 떠올려야 함이 아니라, 상대방에서 그 순간을 이야기하는 순간부터 적당한 단어와 단어를 계속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그걸 뭐라고 할까"라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그렇게.
비가 하도 오길레, 온몸이 퉁퉁 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돌아가는 길에 속이 쓰린 것 보다 기억이 쓰렸다. 또 언젠가, 비슷한 공간에서 또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그 때가 아마 34살, 아닌가 33살이었나..."하며 끙끙거릴테니 말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 대판 싸우고, 평소에 날 믿어주던 후배에게 심한 말을 하고, 머리에 떠올랐던 친구를 만나서 수다소주.
예전에는 얼굴이라도 화끈거리고 며칠 동안 괴로워했던 일들이 이제는 일상처럼 된 듯해서 명치부분이 참 아프다.
급작스럽게, 그런데 존경이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존경이라는 말은 참 부담스러워, 참 힘들어"
수 차례 갔었던 공간이었다. 참 지겹게도 걸었던 길이었다. 그 공간에 있었던 시간들을 순차적으로 잇는다면 며칠이 될 것이다. 저 골목 너머에는 그게 있고, 옆 모퉁이 돌면 그게 있다. 들어가 본 집도 있고, 눈으로만 매번 훔쳐봤던 공간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어야 좋다. 그 바람에 존경도 날아가 버리면 좋다. 그 대신 그 순간을 존경하고 싶다. 그 공간을 존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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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 혹은 반성 (2) | 2010/0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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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에 낑낑거리다가 용기를 내서 오차츠케를 해 먹었다. 그리곤 음악을 틀고 침대가 조용히 누웠다. 계속 그렇게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김광진 아저씨의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좋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내 모습을 말해 주는 듯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노래에서 푹 꺼지는 느낌(이게 안 좋은 느낌이 아니고 마음에서 미처 내려가지 못한 것들이 아주 약간 내려가는 느낌)이 들어, 일어나서 노래 제목을 보았다.
제목 참 그렇다. '아는지'. 나한테 내내 속삭이다가 결국 '너 근데 이거 아니?'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아는지. 애써 태연한 모습 보였지만, 눈물이 흐른 눈물 보니 이별인가봐.
만남의 기쁨은 어느새 사라지고 아쉬움에 헤매이는건,
내곁에 그대 느낌 너무 많아서, 잠들수 없는 그런 사랑
되고 싶은게 꼭 하나 있어 저 하늘 끝 무지개
가끔씩 멀리서 지켜 볼께요. 뭘 하나 궁금해서
나의 그대여, 우리 서로 힘들게 했었지만 절대로 미안하단 말은 하지 말아요.
언제나 나에게 행운이 었던 사람, 인연이 끝났을 뿐인걸
서로를 생각하면 뛰는 가슴을 잊지 말아요 이젠 굿바이.
그대여 우리 서로 힘들게 했었지만 절대로 미안하단 말은 하지 말아요.
단 한 번 나에게 행운이었던 사람, 그런 인연이 끝났을 뿐이야
서로를 생각하면 뛰는 가슴을
제발 잊지 말아요 혹시 그런 마음이 사랑이 아니었나요.
참 좋은 곡이다. 내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는니 뭐 그런 말 보다는, 언제나였는지 아니면 한 한 번이었는지는 몰라서 그 사람은 나에겐 행운이긴 했다. 근데 그 인연이 끝났을 뿐이다. 서로를 생각하면 뛰는 가슴(물론 서로가 항상 가슴이 뛰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잊지 말라는 말. 나는 참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미안하다.
나는 가끔씩 멀리서나서 지켜 볼 용기는 없다. 그건 미안한 일이라서. 그냥 가끔씩, 뛰었던 가슴을 생각하며 잊지않고 싶다.
그 사람한테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그냥 한다면.
그래여 우리 서로 힘들게 했었지만, 절대로 미안하단 말은 하지 말아요.
그런 마음이 사랑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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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댕
2010/11/20 20:17
오랜만에 좋은 글을 쓰네...글을 읽으며 맘이 좀 아팠다 나는 강을 건너왔는데 여긴 황야라는것을 알았다....난 고민끝에 여기에 다음에 강을 건너올 이들을 위한 밭을 하나 일구기로 헸다 이것이 자기연민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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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2010/11/12 16:56
여전히 열심히 사는고나~~나 승리...ㅋ
카카오톡에 주소있길래 함 들어와봤어~
멋져~~ㅎㅎ
윤성호 감독 완전 좋아하는데...ㅎ
재밌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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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멋져요. 글이 참 솔직하고 감성적이며 깔끔해요. 눈물이..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