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이 살아가면서 도달하려고 하는 궁극의 지점은 어디일까. 도달지점을 직업으로 생각한다면 여러가지가 나올 수 있다. 누구는 의사 또 누구는 뭐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직업으로 이야기한다면 결국 모두가 노동자 아닌가. 다르게 생각하여 도달지점을 특정한 사회라고 판단하면 사회주의, 자본주의, 수정자본주의, 수정사회주의(?) 등으로 나눌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도 사회주의자가 존재하고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시장주의자(반동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반동이라기 보다는 한 사회 내에서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왜 아니겠는가.)가 존재하기에 결국 남는 건 자신의 신념이다.
이 신념은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와는 다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해서 자신의 신념이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자신이 믿는 바를 신념으로 구축하고 그 신념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검증하는 것이다.
2. 대학 2학년 때 선배들과 유물론, 변증법 같은 것을 공부하면서 배운 건. '진리의 검증 수단은 오직 실천뿐'이라는 명제였는데 요즘 생각은 바로 이 실천이라는 게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소위 운동권들은 실천을 가두투쟁이나 비합투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발상이나 창조적인 제안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실천으로 보여달라는 말을 먼저 한다. 물론 실천으로 증명하는 건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하지만 제안과 실천의 주체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다. 제안을 한 사람이 반드시 그 실천을 해야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의 제안을 통해 다른 사람이 자극 받고, 그로 인해서 또 다른 제안이 나오고 그런 과정을 반복해서 거치게 되면 비로소 진정으로 실천할 만한, 실천이 가능할 것 같은 제안이 나오는 법이다. 실천이 가능할 것 같은 제안이 나오는 과정을 우리는 '토론'이라고 부른다. 이게 요즘 말해는 '집단 지정, 집단 협업'이라는 개념이라 생각된다.
3. '우리'는 '나' 보다 똑똑하다.
요즘 읽고 있는 <We-think,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핵심이다. '우리'가 '나'보다 똑똑하다는 걸 인식하면 개인들의 오만과 편견이 어느정도 극복될 수 있다. 이 극복 과정은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토론과 대화의 지난한 반복일 수 있다. 만약 '나'가 그 과정에 지쳐 '우리'를 생각하기 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면 오만과 편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 당게나 레디앙의 댓글 토론을 보면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4. 한 블로그에서 아래와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정말 어렵다. 자신의 믿는 바를 증명하는 건. '인생을 걸고, 온 몸으로 해야'되지 않을까 하는 짧은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첫 눈은 언제 오는 것일까.
이 신념은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와는 다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해서 자신의 신념이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자신이 믿는 바를 신념으로 구축하고 그 신념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검증하는 것이다.
2. 대학 2학년 때 선배들과 유물론, 변증법 같은 것을 공부하면서 배운 건. '진리의 검증 수단은 오직 실천뿐'이라는 명제였는데 요즘 생각은 바로 이 실천이라는 게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소위 운동권들은 실천을 가두투쟁이나 비합투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발상이나 창조적인 제안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실천으로 보여달라는 말을 먼저 한다. 물론 실천으로 증명하는 건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하지만 제안과 실천의 주체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다. 제안을 한 사람이 반드시 그 실천을 해야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의 제안을 통해 다른 사람이 자극 받고, 그로 인해서 또 다른 제안이 나오고 그런 과정을 반복해서 거치게 되면 비로소 진정으로 실천할 만한, 실천이 가능할 것 같은 제안이 나오는 법이다. 실천이 가능할 것 같은 제안이 나오는 과정을 우리는 '토론'이라고 부른다. 이게 요즘 말해는 '집단 지정, 집단 협업'이라는 개념이라 생각된다.
3. '우리'는 '나' 보다 똑똑하다.
요즘 읽고 있는 <We-think,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핵심이다. '우리'가 '나'보다 똑똑하다는 걸 인식하면 개인들의 오만과 편견이 어느정도 극복될 수 있다. 이 극복 과정은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토론과 대화의 지난한 반복일 수 있다. 만약 '나'가 그 과정에 지쳐 '우리'를 생각하기 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면 오만과 편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 당게나 레디앙의 댓글 토론을 보면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4. 한 블로그에서 아래와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정말로 어려운 단 한 가지 일은 자신이 믿는 바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탐구하고 있다."
정말 어렵다. 자신의 믿는 바를 증명하는 건. '인생을 걸고, 온 몸으로 해야'되지 않을까 하는 짧은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첫 눈은 언제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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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첫눈 왔었어요 ㅋ
의도치 않게 첫눈을 보았지요
진눈깨비같은 거였지만.
블로그에서 발견한 한문장처럼 생각했었어요.
지금도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민하고 그런게 참 좋아요.
그런데 제가 탐구하고픈 '인간성'에 대한것들은 너무 어려워서 참 괴롭군요.
첫눈이 왔다고...?
진눈깨비 역시 눈이긴 눈이지만 제대로 된 눈이 한 번 와야되는데...
함박눈...
신념을 증명하는 건 수학공식 증명하는 것과 달리 머리뿐만 아니라 손, 발, 심장 등 온 몸이 필요해서 힘들다. 하지만 그게 살아가는 길이니 뭐 어쩔 수 없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