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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대의 이야기 | 2011/07/17 22:23 | 어처구니
1. 나는 그동안 싸이월드, 블로그 등을 통해 우리 가족 이야기를 조금 한 적이 있는데, 아버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나 스스로도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아니라고 하면서도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나 보다. 그럼에도 아버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단순히 내 아버지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아버지를 통해 배우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2. 우리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렸을 때 이사를 많이 다녔다는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지만, 지난 10년 동안 이리저리 역마살이 낀 것처럼 다닌 것에 조금이라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는 가끔 생각한다. 아버지가 군인이어서 집안 분위기가 엄하거나 그런 건 정말 단 1퍼센트도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군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었고 한 인간으로서 삶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레 가장이면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자신의 꿈이나 욕망보다 앞선다고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난 그런 아버지를 싫어한 적은 없다. 어찌보면 현재의 내가 결혼이나 가정같은 것에 내 또래의 친구들과 다르게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그런 아버지의 영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으나까 말이다. 여하튼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는 자기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군인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

3. 문제는 그런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삐긋하면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가족 전체에게 전이되고 결국은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그게 우리 엄마다. 아마 그래서 나는 앞뒤 다 빼고 엄마를 주로 이야기했고 엄마에 대해서 감정이 움직였던 것이다. 큰 근심이나 어려움이 없었던 우리 집에, 이건 내 나이 24살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근데 그 때 아버지는 좀 멀리 나갔다. 도박으로 2억 가까운 돈을 날리고 어느 날부터 표정도 달라졌다. 그리곤 얼마 안되어서 퇴직했다. 그 때 아버지 나이는 내 주변 친구들의 경우로 보면 한창 때였다. 즉, 가족을 위해 한창 돈을 벌어오는 때라는 뜻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때부터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4. 담배는 원래 태우지 않았지만, 술을 그렇게도 좋아했던 아버지였다. 그런 사람이 술을 끊었다. 아들들에게 가끔씩 공부이야기도 하고 싱거운 이야기도 하던 사람이 말수도 적어졌다. 말 자체를 끊은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깊게 들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찾은 출구는 불교 경전이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그 이후로 금강경을 아마 수십번 혹은 수백번 읽고 썼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족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보다는 내면을 다스리는 방법을 택했다. 이 방법은 나머지 가족들을 분노하게 했지만 어쩔 도리는 없었다. 나는 엄마한테 이혼하라는 말까지 했지만 엄마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그 때 결혼과 가족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주 어렴풋이 알아버렸다. 가족은 참으로 무서운 거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5. 그로부터 10년 정도 지난 셈이다. 여전히 빚이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겪었던 일들을 생각한다면(물론 나는 지난 10년의 과정 속에서 철저하게 밖에 있었다. 나는 가족 중에서도 외부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우리 집에 또다른 아버지였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상당히 호전되었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산재를 한 번 당했고, 엄마는 자궁에 물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한 번 했고, 동생은 이 모든 과정을 때론 묵묵하게 때론 격하게 견뎌왔다. 나는, 그 10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여행하듯이 살았다.

6. 오늘 엄마집에 다녀왔다. 나는 2-3개월에 한 번씩 엄마집에 간다. 내가 굳이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엄마집이라고 칭하는 것은 나는 그 집에 가서 정말 엄마집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 집은 정말 엄마집이다. 물론 엄마 소유는 아니고 임대주택이지만 그 신청자는 엄마 이름으로 되어있다. 엄마집에 갈 때마다 나는 이동하는 것을 좋아함에도 늘 무거움 마음으로 지하철을 탄다. 엄마는 큰 아들이 온다고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한다. 나는 그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좀 자다가 빈둥거리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그게 엄마집에 다녀오는 내 패턴이다.

7. 오늘은 조금 달랐다. 엄마집에는 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그 집에 항상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버지의 존재를 새삼 느꼈다. 아버지가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 병을 꺼내더니 마른 멸치, 양파 썰은 것을 놓았다. 처음에는 잔을 하나 놓더니 이내 잔을 하나 더 꺼냈다. 그리곤 나에게. "한 잔 할래?"

8. 정확히 두 잔 먹었다. 3주 동안 비가 계속 내렸다가 비가 와서 그런지 오후 3시였지만 땀이 비오듯 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막걸리를 마셨다. 정치 이야기도 좀 하고, 지역감정에 대해서 좀 이야기하고, 남북문제에 대해서 조금 했다. 10년 만에 아버지에 한 잔 하는 이야기 안주는 그런 것이었다. 아버지는 조금 만족스러웠을까. 10년 만에 아들과 막걸리 한 잔 해서? 물론 나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무언가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9. 물론 막걸리 한 잔으로 지난 10년이 메워지지는 않는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는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는 또다른 아버지였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할 처지가 아닌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금강경을 보고 그 내면을 다스렸다면, 나는 시덥잖은 운동 이론서와 아스팔트 위에서 그 시간을 건너왔을 뿐이다. 내가 우리 아버지에게 배우는 점 하나는, 아버지는 항상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학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그것에 있다고 믿고 싶을 뿐이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그런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그 메일은 아버지가 나에게 금강경 몇 구절을 보내며 그걸 읽고 마음을 다스리라고 한 메일에 대한 답장이었다. 나는 부자 관계 중에 가장 좋은 건 함께 공부하는 관계가 아닐까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나와 아버지는 이 순간을 지내고 있다.

10.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건강하길 기원한다. 내가 아끼는 후배의 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병원에 계셨기 때문에 그 친구도 담담하게 준비했지만, 시간이 흐를스록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10년은 2억이라는 돈을 갚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골목길로 들어가 헤매다가 지금 막, 딱하고 마주치기 위한 시간이었다. 나는 꼬인 골목에서 지금 나왔다. 아버지도 그 골목에서 나왔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가 있는 그 골목으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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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17 22:57

    비밀댓글입니다

  2. 샛별 2011/10/04 00:17

    글 참 좋네요. 농담반 진담반 유쾌하게 나누는 말도 좋던데, 이런 글은 진심을 담은 글만이 주는 울림이 있어 좋은듯. 내가 아버지가 있는 그 골목으로 가면 되니까...참 성숙한 사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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